AI(인공지능)이 방송가까지 침투했다.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예능국에 AI PD가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상징할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할리우드 배우 존 조는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 사용에 대해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다. 예술이라는 분야만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반드시 있다"라면서 AI 사용을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같은 해 할리우드 배우 및 방송인 노조는 AI 생성 이미지와 목소리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파업을 긴 시간 이어가기도 했다.
이 가운데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인 K-예능에서는 AI를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예시로 지난달 27일 첫 방송된 MBC 'PD가 사라졌다'가 있다. 'PD가 사라졌다'는 AI 기술로 만들어진 프로듀서 M파고가 MBC 입사 후 예능 PD가 되어 직접 프로그램을 연출한다는 콘셉트로 기획된 사회실험 프로젝트다. 특히 세계 최초로 AI PD가 연출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한껏 모였다.
세계 최초 AI PD M파고는 캐스팅부터 연출, 실시간 편집, 출연료 산정 등 기존 인간 PD의 역할을 대신하여 수행한다. M파고는 현장에서 디지털 휴먼으로 직접 등장, 출연자들과 직접 소통한다. AI PD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참가자들이 원하는 미션을 재구성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1회, 2회에서는 출연자들과 AI PD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게 다뤄졌다. 출연자들은 미션을 받고 움직이면서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구간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PD가 사라졌다'에서 인간 PD의 존재는 지워지고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데 전체적으로 진행이 효율적으로 흐를 것이라는 예측을 뛰어넘는다. AI PD는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계속 진화하고 성장하면서 우리가 그간 숱하게 봤던 SF 영화들을 떠올리게끔 만든다.
M파고의 역할은 캐스팅부터 연출, 실시간 편집, 출연료 산정 등이다. 출연자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코미디언 김영철을 비롯해 가수 윤서연 윤비 등 다양한 직업군의 출연자들은 직접 M파고가 섭외했다. 힘, 감각, 관찰력 등 각자의 키워드를 토대로 꾸린 라인업이다.
연출을 맡은 최민근 PD는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PD가 사라졌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최 PD는 가장 먼저 'PD가 사라졌다'가 사회실험 프로젝트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최 PD는 2022년 챗GPT 베타 버전이 출시된 후 대중화된 시점부터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프로그램의 플롯을 구상하게 됐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인간의 영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를 하는 모습'이 이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다. 최 PD는 이러한 행태에서 AI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기획, 연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간 보조적 수단 장치에 그쳤던 AI가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해 많은 부정적 시선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최 PD에 따르면 M파고는 'PD가 살아있다' 현장에서 편집부터 연출까지 해낸다. 실무진 역시 개입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정육면체의 큐브가 이 실험의 배경이 된 이유 역시 실제 PD나 작가진의 개입을 물리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다만 현장의 프롬포터 역할을 실제 제작진이 도맡으면서 소통을 대신했다. 이는 AI가 보조적 장치, 인간 PD가 실질적 주체였던 타 현장과 정반대되는 선상이다.
현장을 떠올린 최 PD는 "M파고가 편집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물론 인간이 하는 것만큼 그렇게 디테일하거나 세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편집들을 빠르게 한다. 더 놀라운 건 계속 피드백을 받으면 진화하는 속도다. 실시간으로 AI PD가 출연자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미션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신기한 점이다. 그 미션이 시청자들이 볼 땐 엉뚱하고 황당할 수 있겠지만 제작진이 회의를 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조합들이고 예상치 못한 미션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AI이기에 인간보다 더욱 창의적인 시선으로 미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정관념이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신선한 발상이 이어지면서 AI 연출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을 야기했다. 특히 M파고는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출연자들의 특성이나 습성들을 입력하면서 점점 더 맞는 진행을 하는 모습이 후반부 관전 포인트다.
그렇다면 실제 AI PD를 겪어본 최 PD는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바라볼까. 최 PD는 "실제로 한 출연자가 M파고에게 '너가 생각하는 예능이 뭐냐'라고 물었는데 M파고가 '웃음과 즐거움을 주면서 지금 예능 트렌드에 맞게 감동도 줘야 한다. 또 출연자들의 협동도 좀 보여줘야 된다'라고 답했다. 이는 설정값이 아닌 M파고 본인의 생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됐다"라면서 밝은 미래를 바라봤다.
결론적으로 AI PD의 방송 연출은 프로그램마다 다른 데이터를 취합하고 피드백을 수용하는 것에 최적화된 방안이다. 인간 PD 못지 않은 능력, 여기에 빠른 수용력과 데이터 분석력이 뒷받침된 AI PD는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같은 연출자 입장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엔 "솔직히 말씀드리면 AI PD가 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을 한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한계, 고정관념에 멈춰 있을 때가 있지만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콘텐츠를 제작한다"라고 답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짝'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한 황성준 PD는 예능가의 AI PD 등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황성준 PD는 본지에 "새 프로그램 만들 때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한다. PD의 경험으로 축적된 생각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간단한 데서 나오기도 한다. 아이디어 면에서는 AI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라면서 "다만 우리 일이 협력을 하는 일이고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AI PD가 인적 네트워크까지 발휘할 순 없다고 본다"라고 소신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