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권 지도자이자 '푸틴의 정적'으로 불렸던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1일 오후(현지시간) 거행됐다. 지난달 16일 옥중에서 사망한 지 2주 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섰던 탓에 장례식마저 '의문의 방해'를 받다가 한참 뒤늦게 열리게 됐다.
영국 BBC방송,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모스크바 남동쪽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달래소서) 교회 앞에는 시민 수천 명이 모여 나발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발니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오후 2시쯤 교회로 진입하자,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슬퍼했다. 일부는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를 끌어 안으며 “(나발니를 지키지 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류드밀라는 침통한 표정으로 아들이 교회 인근 보리소프 묘지에 안치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고 밝힌 마리나는 CNN에 “나발니는 영웅이었고,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 달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다가 좌절된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야권 인사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의 대사들도 현장에 참석했다.
이날 장례식은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상황을 생중계하던 BBC와 CNN은 장례식이 시작하자 갑자기 주변 통신이 차단되어 영상 송출이 불안정했으며, 식이 진행된 교회 내부 촬영도 금지됐다고 전했다. 교회 주변에는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묘지까지 동행하는 시민 일부가 보안 수색을 받았다. 장례식에서 반(反) 체제 발언을 할 경우 체포될 위험도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전쟁 반대” “러시아는 더 자유로워 질 것” “우리는 두렵지 않다” 등 외침도 나왔다.
CNN은 현지 인권단체 ‘OVD-Info’를 인용해 “현장 추모객 최소 한 명이 체포됐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떠났던 시민 22명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나발니 측은 반체제 운동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대변인이었던 키라 야르미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계속해서 나발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나발니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는 SNS에 "지난 26년간 덕분에 행복했다"며 "당신이 그곳에서 행복하고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적었다.
나발니는 푸틴 정권을 비판하다 '극단주의 활동' 등 혐의로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중 돌연 숨졌다. 지난해 12월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이감된 지 약 두 달 만이었다. 죽어서도 고초를 겪는 듯, 류드밀라는 사망 엿새 뒤인 지난달 22일에야 아들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장례식을 비공개로 치르라'는 협박도 받았다. 유족은 장례식장과 영구차를 구하기도 어려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