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독립 21번 자유 17번 언급하며 독립운동ㆍ통일론 재정립

입력
2024.03.01 18:00
3ㆍ1절 기념사 통해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재평가
'자유민주주의 통일' 방향 처음 제시
"인류 보편의 가치 부정", 北 비판

"기미독립선언의 뿌리에는 당시 세계사의 큰 흐름인 자유주의가 있었습니다."

1일 윤석열 대통령의 105주년 3ㆍ1절 기념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자유'였다. 윤 대통령은 "3ㆍ1운동 정신인 자유의 가치"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와 새로운 한반도 통일 담론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했다.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무장 독립운동 외에 외교, 교육ㆍ문화 분야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동안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일본에 대항한 무장 독립운동이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그 외 영역에서 독립에 기여한 인물들을 또 다른 잣대로 평가해보자는 취지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한민국 건국 이후 산업 발전을 이룬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기념사 곳곳에서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독립과 동시에 북녘 땅 반쪽을 공산전체주의에 빼앗겼고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며 "자본도 자원도 없었던 나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고속도로를 내고 원전을 짓고 산업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미래를 바라보며 과학기술과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승만·박정희) 두 분 대통령을 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는 40여 일 앞둔 총선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3ㆍ1절 기념사의 키워드를 얼마 뒤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을 고려한 '한일 정상화'로 맞췄듯, 이날의 메시지 역시 총선용 '보수결집'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그동안 과도하게 무장 독립투쟁이 강조돼 왔다"며 "일제에 저항해 무슨 무기를 들고 무장 투쟁한 사람만 우리 독립에 기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자신의 '통일 구상'도 담았다. 취임 첫해인 2022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전제로 한 '담대한 구상'을 언급하긴 했지만, 통일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며 "통일은 우리 혼자 이룰 수 없는 지난한 과제다. 국제사회가 책임 있는 자세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30년 넘게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 대해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북한의 모든 주민이 함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 당위이자 명분"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날보다 보다 구체화된 통일 비전이 오는 8월 대통령 광복절 축사를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도발과 억압을 정권 유지의 근간으로 삼는 북한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이어가며 최악의 퇴보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유린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며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북한 주민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약 3,000자 분량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독립(21회), 자유(17회), 국민(12회), 북한(9회), 통일(8회), 번영(8회) 등의 단어를 강조했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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