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와 함께 세계로 수출되는 한국 장르문학...팔리는 이유는 '여성'

입력
2024.0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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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 ‘스노볼’ 미국 출간 이어
‘메모리케어’ ‘런어웨이’ 등 수출 활발

오는 2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출간되는 박소영 작가의 장편소설 ‘스노볼’에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Ajumma’로 등장한다. 아줌마뿐 아니라 생일에 먹는 미역국 등 한국 특유의 문화가 곳곳에 담겼지만, 해외소설에 주석처럼 달리는 설명은 생략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 작가는 25일 한국일보에 “'한국 문화를 접한 미국 독자가 많아 이 정도는 유추해 내거나 적극적으로 찾아볼 것'이라는 번역가 의견을 따랐다”고 전했다. 미국 출판전문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소설의 출간 소식을 다루며 “한국적인 요소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순수문학 작가가 주로 소개되던 세계 무대에 박 작가의 ‘스노볼’을 시작으로 한국 장르문학이 잇따라 진출한다. 기후위기, 인공지능(AI),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보편적으로 통하는 주제와 서사에 한국적 요소를 담아 평론가나 소수의 마니아가 아닌 본격적으로 대중을 노리는 작품들이다. 한국 문학을 발굴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덕이다.

“전세계가 읽는 소설 쓰겠단 꿈 이뤄져”

‘스노볼’은 기후변화로 얼어붙은 지구에 유일하게 남은 안전지대인 돔 모양의 스노볼에 대한 이야기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스노볼에 거주하려면 ‘액터’가 되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바깥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방송으로 보여줘야 한다. 평균 기온 영하 40도 안팎의 험한 환경에서 스노볼의 방송이 유일한 오락거리인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도 액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인기 있는 액터와 얼굴이 똑 닮은 10대 여자아이 ‘전초밤’이 죽은 액터를 대신하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기후위기를 배경으로 SNS가 촉발시킨 과시욕, 탐욕, 관음증을 건드리는 이 소설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등 10개국에 수출됐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와 계약했다. '스노볼'을 기대작으로 꼽은 펭귄랜덤하우스는 미국 출간에 맞춰 박 작가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박 작가는 미국에서 강연 등으로 독자를 만난다. 그는 “중학생 때 소설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언젠가 전 세계에서 읽히는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꿨는데, 20년 전의 꿈이 현실이 되다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창작물만의 ‘한국의 맛’ 담은 장르문학들

해외 출판을 앞둔 장르문학에는 한국 창작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의 맛이 느껴진다. 국제 문학 에이전트 바바라 지트워가 지난해 새로운 작가 발굴을 위해 세운 참에이전시는 첫 작품으로 진보라 작가의 SF(공상과학) 소설 ‘메모리케어’를 낙점했다. 참에이전시는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로 한국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독자 취향에 맞는 신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는 취지의 공모전을 열었다.

등단 경험이 없는 진 작가의 ‘메모리케어’는 부산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멋대로 통제하는 도시를 그렸다. 지트워가 해외 출판 계약을 추진하는 박현주 작가의 로맨스 미스터리 소설 ‘서칭 포 허니맨’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다. 제주의 풍경, 해녀, TV 광고로 결혼식·장례식 등 개인 경조사를 알리는 풍습 등이 나온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유명 출판사 반탐북스와 최근 출판 계약을 마친 장세아 작가의 ‘런어웨이’는 K 고딕 스릴러로 미국 시장에 소개된다. 고전 고딕 소설의 감성을 한국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여성이 쓴 여성 이야기로 세계적 공감대

영미권에 출간 예정인 작품들은 모두 '여성 장르작가가 쓴 여성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SF의 상상력을 가미한 ‘스노볼’과 ‘메모리케어’뿐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친구에게서 도망치거나(‘런어웨이’) 제주도에서 이른바 썸을 타다가 연락이 끊긴 남성을 찾는(‘서칭 포 허니맨’) 등 주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여성들이다. 이런 공감대는 국경을 넘어 작품에 몰입하는 열쇠가 된다. ‘런어웨이’의 한국 출판사 아프로스 미디어의 주자덕 대표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재미도 있거니와 여성 서사로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여성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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