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프로그램 개발자가 불안과 초조함이 심해져서 일이 도대체 진행되지 않는다며 클리닉에 방문했다. 본인이 제안한 프로젝트이고, 다음달까지 시제품을 완성하겠다고 주장해 시작한 것인데 도무지 일이 안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본인의 창의력과 개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고민이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기에 타고난 게으름 때문은 아닌지 본인의 능력 부족을 자책하고 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거나 입사 시험·자격증 등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샘 솟고, 자신감에 넘쳐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운다. 언제까지 하면 된다는 시간까지 안배해 계획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매일 4시간은 그 일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지나는 경우가 많다. 자료를 찾고 개략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서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면 되는데, 머리가 멈춘 것처럼 꾸물거리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교 때 책을 잡고 보기만 하면서 농땡이 부리던 모습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 아무래도 본인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탓한다. 심한 경우엔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직장 동료와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스스로를 자학한다.
사실 이런 ‘자기 비난’은 ‘하지 않음’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된다. 하기로 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한정 늦어질 때 느끼는 죄책감은 행동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때 일어나는 방어적 심리 반응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게으른 놈이라 자책한다며 며칠씩 숨어버리거나 술에 잔뜩 취하는 등으로 실컷 자책을 하고 나면 하지 않고 있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좀 줄어드는 것 같다. ‘나는 못난 놈이니까 이런 일은 당연히 못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하는 셈이다.
이때 옆자리 동료를 바라보면 아무런 갈등 없이 일을 잘 하는 것 같고, 하는 일마다 칭찬을 받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역시 나는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기 비하에 익숙해진다.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다. 존중이라는 말에는 믿음과 신뢰, 기다림의 의미가 담겨있는데, 본인 자신마저 동정의 대상으로 삼으니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남들도 그저 나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만 든다.
이렇게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매일 아침이 두렵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죄책감과 자기 비하는 점점 더 심해진다.
결론은 사실 단순하다. 우선 지금 일하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며 비판하는 사람은 본인 말고는 별로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인생살이에서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은 든든한 마음속 기둥이 되지만, 타인의 인정에만 목 매다 보면 나 자신의 가치보다 소위 세상에서 좋다는 것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엄마나 상사가 좋다는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니 뭔가 이룰 때마다 옆 사람이 당신을 칭찬하고 인정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우리 동료들 모두 각자의 삶을 위해 사느라 타인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또한 인생의 가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명예와 돈을 좋아할 수도 있고, 사회에 대한 헌신을 추구할 수도 있다. 현자들은 본인 가치에 맞는 삶을 추구하면서 내가 속한 사회에 뭔가 공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인정하는지 그 목적을 따라야 가장 편한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기 결정성’이라는 것은 인간 행동은 외부 요인 뿐 아니라, 개인의 내적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하고 싶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개인에 따라 잘 하는 분야는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 현실적 상황과 능력에 따라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정하고, 그에 맞춘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내가 정한 일정에 따라 오늘 해낸 일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오늘도 내가 게을렀다고 자포자기하기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게으름을 이겨내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