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잠겨 있는 게 어떻게 국보이고 문화재인가요?"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만난 문명대(85) 동국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정부가 지난달 울산 울주 '반구천의 암각화'(울산 울주 천전리 각석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하면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1970년과 1971년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처음 발견하고 조사했다. 천전리 각석은 1971년 1월 1일 자 한국일보의 특종 보도로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으며, 인류사적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의 미적 표현과 문화의 변화를 집약한 유산이다.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7,000년~3,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거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독보적 유산이다. 문화재청은 두 국보를 '반구천의 암각화'로 통칭해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옛날 사진을 보세요. 60년 동안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암면 가장 아래 부분에 틈이 생기더니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문 교수는 1971년과 1977년 조사 당시 촬영한 반구대 암각화 사진과 최근의 것을 비교해 보여줬다. 두 개의 층으로 나뉜 암반 사이의 틈이 육안으로도 차이가 났다. 1970년대에는 종잇장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던 암각화 밑부분이 완전히 탈락해 빈 공간이 확연했다. 울산시에 식수·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5년 사연댐을 지은 뒤 반구대 암각화와 맞닿은 대곡천의 수위가 올라가 1년에 약 6개월 동안 암각화가 물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 물이 찼다 빠지는 것이 반복되면서 물에 잘 녹는 방해석이 섞인 셰일 암면이 풍화작용으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훼손은 20년 이상 묵은 문제다. 2003년부터 차수벽 설치, 생태제방 건설, 물길 변경, 카이네틱(투명구조물) 댐 설치 등 보존책을 강구하기 위한 온갖 용역에 들어간 세금만 2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2021년 사연댐에 수문 3개를 설치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환경부는 한국수자원공사, 문화재청, 인근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지난해 '수문 설치에 관한 기본계획'을 고시할 예정이었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후에도 제자리걸음이다. 인근 지역의 물 공급 문제 때문이다.
문 교수는 "댐 수위를 8~10m 정도만 낮춰도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는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줄 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올해 3월부터 내년 5월까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의 현장 실사와 평가가 진행되는데, 유산의 관리나 보존 등도 평가 항목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도 22일 기자들과 만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사연댐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심사 보류를 당할 수 있어 실사단이 오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연구 측면에서도 남은 과제는 많다. 호랑이, 고래, 사슴 등 구체적인 도상이 특징인 반구대 암각화와 달리 천전리 암각화는 겹마름모, 물결무늬, 타원 등 온갖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한데 그 뜻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문 교수는 이것이 '원시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암각화 발견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아직 국내 연구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아쉬워했다.
"각 문양들은 그림문자에 속하는 일종의 원시문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의 하, 은, 주는 청동기 시대이지만 문자가 있어 역사시대로 취급받죠. 천전리 암각화 벽화가 문자인 것이 밝혀지면 우리의 역사시대가 그만큼 확장될 수 있습니다. 유능한 후학들의 근본적인 연구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