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내건 정부가 ‘외환위기 트라우마’로 걸어 잠갔던 원화 거래 빗장을 푼다. 주식 투자에 한해 외국인이 원화를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환전 절차도 간소화한다.
21일 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권결제‧환전 편의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정여진 기재부 외환제도과장은 “투자 목적의 원화 차입을 허용하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큰 의미”라며 “외국환거래 규정을 바꿔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는 위기 시 외국인이 원화를 팔 경우 원‧달러 환율이 올라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외국인투자자의 원화 보유를 엄격히 규제해왔다.
그 첫발은 앞서 정부가 외국인투자자의 환전수수료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3자 외환거래(FX) 활성화다. 제3자 FX는 A은행에 원화‧달러 계좌를 튼 외국인투자자가 A은행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고 이 돈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수수료가 더 낮은 B은행에서 환전한 뒤 해당 금액을 A은행의 계좌로 이체해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러나 B은행에서 A은행으로 송금이 제대로 안 돼 주식 결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 그간 활성화하지 못했다. 외국인투자자도 비싼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 주문 결제 목적의 원화 차입을 허용한다. 외국인투자자가 주식 매수 주문 사실을 입증하면 원화‧달러 계좌를 개설한 A은행에서 주식결제대금을 빌려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는 송금 실패 우려 등을 덜어 제3자 FX가 활성화하고, 외국인의 주식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중 환전 문제도 해소한다. 채권 주문을 대행하는 국제예탁결제기구(ICSD) 등을 통해 국내 채권을 매도‧매수하던 외국인이 직접 투자하려면 환전을 두 번 해야 했다. ICSD 계좌의 원화를 달러로 바꾼 다음 국내 은행 계좌에서 다시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이중 수수료가 발생했다. 정 과장은 “앞으로는 ICSD 내 원화를 국내 계좌로 직접 송금할 수 있게 돼 투자 편의가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외국 금융기관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통해 한 번에 증권 매매를 할 수 있게 개선한다. 기존에는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었다면 펀드마다 대금 결제를 위한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