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는 1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북러 군사협력이 한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남북한 양쪽 모두와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북한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시작 이후 러시아의 행동을 전면적으로 지원해온 나라"라고 추켜세웠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고, 최근 러시아 외무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을 공개 비난할 정도로 한러 관계가 악화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북러 밀착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인터뷰는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진행됐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러 관계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관계에 있지는 않다"며 "관계 악화를 막을 수 있도록 서로 이익을 침해하는 조치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지난해 대러시아 수출금지 품목을 57개에서 798개로 확대하기로 예고한 것을 두고 "유감과 실망"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협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고 해서 전쟁 흐름이 바뀌거나 하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우리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죽인 무기를 공급하는 나라와 정상적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반면 북한의 대러 무기지원에는 태도가 전혀 달랐다. 그는 "러시아는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을 준수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북러 간 군사협력을 기정사실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런 증거물이 있다면 하나라도 보고 싶다"고 반문했다. 이어 "근거 없는 주장이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인정한 공신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위원회 전문가 패널에는 미국과 러시아 모두 참여하고 있어 양국의 입장이 부딪칠 경우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대신 지노비예프 대사는 '3단계 로드맵'을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17년 북한의 비핵화 해법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중단 △남북, 북미, 북일 간 평화공존 및 군사력 불사용 관련 협정 체결 △동북아 지역의 안보체제 수립 위한 다자협정 체결을 담았다.
그러면서 한미 군사연습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훈련 때문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러시아는 여전히 한반도 문제와 역내 현안을 외교정책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 지역에서 긴장을 완화하려면 우선 상대방이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삼을 수 있는 행위의 수준을 낮추거나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미·한미일 연합훈련이나 미국이 역내 국가들과 강화하고 있는 군사협력이 그러한 것"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위협을 느끼듯,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과 한미일 3국 군사협력에 위협을 느낀다"며 "해당 훈련에는 북한의 지도부를 침몰시키는 그런 모의 공격이 포함돼 있다"고 부연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2년간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상대방이 준비가 될 때 러시아도 진지한 평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해왔다"며 "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은 서방과 우크라이나"라고 비판했다. 또 "러시아를 패배시키려는 서방국가들과 우크라이나의 노력은 지금까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겨냥한 전략적 위협이 없는 상태를 보장받으려면 최소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중립적 지위를 약속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