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지원이 주요 업무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한 달 넘게 새 위원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영상산업 급변 속 한국 영화 위기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 진흥 정책을 이끌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영진위는 지난 4일부터 김선아 부위원장의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박기용 전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사퇴하면서 영진위 수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박 전 위원장은 임기가 지난달 8일까지였으며 새 위원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업무를 계속했다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물러났다.
영진위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는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이후 7년 만이다. 2017년은 이번과 상황이 달랐다. 김세훈 위원장이 영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조기 사퇴하면서 위원장 자리가 비었다. 김종국 부위원장과 이준동 부위원장이 8개월 동안 직무대행으로 일했다. 블랙리스트 여파로 문체부가 후임 위원장 선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영화계 안팎 여론이 반영되면서 직무대행 체제가 길어졌다. 지금은 박 전 위원장 임기 만료가 예고된 상황에서 위원장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영화는 코로나19 이후 위기에 처해 있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 관객은 6,075만 명으로 2019년(1억1,562만 명)보다 반 가까이 급감했다. 2022년(6,279만 명)보다 200만 명이 줄어들기도 했다. 영상산업의 헤게모니가 넷플릭스와 티빙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빠르게 넘어가면서 영화계의 대응 마련이 시급하기도 하다.
영진위 자체가 위기이기도 하다. 올해 예산은 589억 원으로 지난해(850억 원)보다 260억 원가량 줄었다. 영화관람료에서 3%씩 징수하는 영화발전기금이 코로나19에 따른 관객 급감으로 고갈된 영향이 크다. 예산 감소로 올해 독립영화와 영화제 지원금은 지난해보다 반 토막이 났다. 영화인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동시에 새 진흥 정책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영화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영진위 새 위원 선임을 늦추면서 리더십 공백을 자초했다는 이유에서다. 영진위는 임기 3년 9인 위원 체제로 구성돼 있다. 2021년부터 위원장은 위원들 호선으로 선출하고 있다. 위원들 선임 시기는 각기 다르다. 박 전 위원장은 이언희 감독과 함께 2021년 위원이 됐고, 2022년 1월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영진위 관계자는 “문체부가 새 위원들을 선임하지 않으면 위원장 선출을 위한 호선을 할 수 없다”며 “직무대행 체제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문체부가 통제 가능한 위원장 선출 구도를 만들기 위해 새 위원 선임을 늦춘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추혜진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6월까지 기다렸다가 새 위원 3명을 한꺼번에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민아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과장은 “지난해 9월부터 영화 단체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문체부 자체에서 인물을 발굴하는 데 시간이 (예상보다) 걸렸다”며 “지금은 인사 검증으로 위원 선임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