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39호실 소속 정보기술(IT) 조직이 국내 범죄 조직과 불법 도박사이트 수천 개를 거래하며 외화를 불법으로 벌어들인 사실이 국가정보원에 적발됐다. 국내 조직은 북한 조직이 제작한 불법 도박사이트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제작한 사이트들에 악성코드를 심어 회원정보 등을 탈취했다. 불법 사이버 도박 범죄 배후에 북한이 관여된 사실이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은 14일 "중국 단둥에서 활동 중인 '경흥정보기술교류사(경흥)'가 15명 조직원 분업을 통해 성인과 청소년 대상 도박 사이트 등 각종 소프트웨어를 제작·판매해 1인당 월 500달러씩 평양에 상납했다"고 밝혔다. 경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산하 조직으로 파악됐다.
노동당 39호실은 조선노동당의 재정경리부로 1974년쯤 구성됐다. 외화벌이 조직이자 북한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개발 업체인 경흥은 북한판 '닌텐도 wii'라고 할 수 있는 전자오락조종장치나 전기절약을 위한 자동스위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경흥이 대남공작 업무를 하는 정찰총국 소속 파견 직원들로 구성, 불법 도박사이트를 제작한 뒤 이를 중국인 개발자로 위장해 판매했다고 밝혔다. 처음에 IT업계 종사자의 경력증명서를 도용해 불법 도박사이트 제작 일감을 수주한 뒤 사이트를 만들어 한국인 범죄조직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체류지는 조선족 대북 사업가가 소유·운영 중인 중국 단둥시 소재 '금봉황 복식유한공사'라는 의류 공장 기숙사로 확인됐다.
경흥 조직원들은 불법 사이트 제작 대가로 건당 5,000달러(약 668만 원), 유지·보수 명목으로 월 3,000달러(400만 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인 명의 은행 계좌나 차명 계좌를 이용했다. 대금 역시 해외 송금이 용이한 '페이팔' 서비스를 통해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급받은 돈은 중국 내 은행에서 현금화해 북한으로 송금했다.
국내 범죄 조직은 북한의 불법 도박사이트 제작 비용이 한국이나 중국 개발자에 비해 30~50% 저렴할뿐더러, 한국어 소통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흥과 거래를 본격 시작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경흥 조직원들과 한국 범죄조직원 간 주고받은 메시지를 볼 때, 북한에서 사이트를 제작한 사실을 국내 조직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공조해 이들 국내 조직의 구체적 실체를 규명 중이다.
또한 경흥은 불법 도박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 개인정보를 탈취하기도 했다. 국내 조직에 판매한 도박사이트용 서버를 통해 한국 기업의 기밀을 해킹하는 데 이용했다. 국정원은 "이렇게 확보한 한국인 회원의 이름, 연락처, 계좌번호 등의 개인정보 1,100여 건을 판매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