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있는 사무실서 상의 벗고, 강제로 병가 쓰게 한 해경 간부

입력
2024.02.12 15:44
해경, 품위유지 위반 등 견책 처분
A경정 '징계 과도' 행정소송 제기
법원 "해경청 처분 적법하다" 판결

여성 경찰관이 있는 사무실에서 상의를 벗고, 부하 여경에게 강제로 병가를 쓰도록 한 해경경찰청 간부가 경징계 처분을 받자 ‘징계가 과도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행정1-1부(부장 이현석)는 해경청 소속 A경정(계장급)이 해경청장을 상대로 낸 견책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해경청 자체 조사결과 A경정은 2021년 12월 인천 연수구 해경청 본관에서 열린 총경 승진 역량평가 면접이 끝난 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상의를 벗었다. 당시 사무실에는 여경 3명이 있는 상태였다. 같은 공간에 있던 남자 경찰관이 “갑자기 옷을 왜 벗으시냐”고 물었지만, A경정은 자신의 책상 앞에 서서 상의 속옷(런닝 셔츠)만 입은 채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모습은 사무실에 있던 여경의 휴대폰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또 A경정은 같은 해 3월 평소 건강이 좋지 않고 과한 업무로 정신적 압박이 심하다는 이유로 재택근무를 신청한 여경 B씨에게 “과장님 지시로 병가조치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A경정은 B씨 의견을 무시한 채 다른 직원에게 병가신청서를 작성토록 한 뒤 본인이 직접 결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청은 2022년 4월 A경정에 대한 품위유지의무와 성실의무 위반 등으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견책 처분과 함께 타 지역으로 전보 처리했다. A경정은 이 같은 해경청의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경정은 소송에서 “면접 평가 후 급히 환복 할 필요가 있어 책상 앞 설치된 칸막이보다 낮은 자리에서 환복하면 동료들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상의를 벗은 것”이라며 “B씨의 묵시적인 동의 아래 병가를 결재한 것으로 직무상 권한 등을 이용해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경청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일한 사무실 인근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화장실이 있어 품위 손상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또한 B씨가 병가를 쓰겠다고 말한 사실이 없고, B씨 의사에 반해 병가를 가게 한 행위는 부당한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해경청 행동강령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행위 모두 징계양정 기준에 따르면 견책 이상이고, 원고가 받은 징계가 비례 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임명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