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1930~2021)의 뇌가 3년째 '냉동 보관' 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과학 기술이 충분히 발전됐을 때 나의 뇌를 연구해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른 조치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중국 홍성신문은 12일 "미래의 '뇌 연구'를 위해 자신의 뇌를 냉동 보관해 달라는 리쩌허우의 유언이 이행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리쩌허우의 말년 시절 친구인 마췬린의 발언을 인용한 SCMP 등에 따르면, 2021년 11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그가 91세 나이로 사망하자 유가족은 고인의 유지를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리쩌허우의 뇌를 미국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 맡겼다. 마췬린은 지난해 12월에야 유가족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미학 열풍이 불었던 1980년대, 리쩌허우는 중국 청년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겨졌다. 1954년 베이징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절, 농촌으로 쫓겨나 사상 개조를 강요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중국 사상 3부작으로 불리는 '중국근대사상사론' '중국고대사상사론' '중국현대사상사론'을 잇따라 펴내며 공산주의 서적에만 파묻혀 있던 청년들에게 '계몽'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1989년 프랑스 국제철학아카데미에서 동양인으로선 유일하게 원사(院士)로 위촉됐고, 20세기 최고의 지식인으로 평가되던 프랑스의 자크 라캉(1901~1981)에 필적하는 학자로까지 꼽혔다.
그러나 또다시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들의 시위에 귀를 기울이라"는 청원서를 냈던 탓이다. 결국 1991년 미국으로 망명해 콜로라도에 정착했다.
리쩌허우는 살아생전 자신의 뇌를 냉동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80세였던 2010년 광저우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후 나의 비문(碑文)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뇌는 얼려 둘 것"이라고 말했다. "300년 또는 500년 뒤에 내 뇌를 꺼내서 중국 문화의 흔적을 찾는 게 가능한지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실제 리쩌허우는 1960년대 사회·문화·역사적 생각이 인간의 뇌에 물리적으로 누적된다는 이른바 '축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주변인들은 이런 유언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마췬린은 "리쩌허우의 비범한 결정이 시신의 온전한 보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2년 넘도록 그의 뇌가 사망 당시 상태로 냉동 보관되고 있었던 셈이다.
인체 냉동은 통상 불치병 환자가 미래엔 치료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리는 최후의 선택 정도로 인식된다. 부활이 아닌 연구 목적으로 '뇌'만을 따로 냉동 보관하는 경우는 드물다. 리쩌허우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95%"라면서도 "나의 이론이 증명된다면, 내 저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학문적 기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