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파업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 다만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행부 사퇴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 파업이 강행되더라도 설 연휴가 지나고서 이뤄질 전망이다.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가담 여부가 파업의 성패를 가를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이들의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의협은 7일 오후 긴급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설치 안건을 논의한다. 전날 이필수 회장의 사퇴 선언에 따라 집행부를 대신해 의대 증원 투쟁을 담당할 기구를 구성하는 절차다. 의협은 당초 설 연휴 이후에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집행부 공백 혼란을 신속히 수습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총회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총회에서 비대위 설치가 의결돼도 비대위원장 선출 등 비대위 구성 절차가 남은 만큼, 파업 시기는 설 연휴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대 증원 정책의 지지도가 높은 상황에서 의사들이 즉각적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을 초래할 경우 여론의 역풍이 클 거란 계산도 의협 내부에서 감지된다. 이 회장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설 연휴에 파업을 개시할 거냐는 질문에 "우리의 모토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며 국민 피해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부인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임시총회 개최 날짜를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후로 잡았다.
다만 의사계의 집단행동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시도 의사회는 잇따라 파업 동참 의사를 밝혔다. 강원도의사회는 "2024년 2월 6일은 의료계 사망선고일"이라고 정부를 맹비난했고, 울산시의사회는 "졸속 증원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4월 총선에서 투표로 심판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고 경고했다.
반면 지방 의대들은 정원 확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울산대 의대는 "현재 40명인 정원을 3배까지 확대할 수 있다"며 "그간 정원의 제약을 받았던 지역인재전형도 충분히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양대는 "지난해부터 의대 정원 확대에 대비해 학생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시설을 증축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환자·시민단체도 의대 정원 확대를 반겼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대 증원은) 고사 직전인 필수·지역의료, 공공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며 "정부는 환자 치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밑바탕이 그려졌다"며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에 공급되려면 공공의대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사단체 집단행동 단속에 나섰다. 특히 전공의 파업 합류를 막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면 종합병원 운영 파행이 불가피하고 응급·중증환자 진료 마비 사태가 우려돼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복지부 산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를 주재하고 전공의를 교육하는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를 명했다. 의료법과 전문의 수련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 전공의 사이에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전에 집단으로 사직서를 낼 움직임을 보이자 대처에 나선 것이다. 조 장관은 이날 오전에는 서울 중구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회의실로 221개 수련병원 병원장을 소집해 "철저한 전공의 관리 감독으로 필수진료를 유지하고 비상진료체계를 구축해달라"고 당부했다.
전날은 수련병원별로 전공의 감시인력을 배정한 복지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해당 문건에는 병원별로 3~5인의 현장점검 담당자를 배정하고, 빅5(5대 상급종합병원)나 대전협 집행부 근무 병원은 유사시 경찰청 경비국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문건에 대해 "전담인력 배치는 이전에도 파업이 예상되면 시행했던 일"이라며 "국민들의 안전한 의료이용을 위한 조치일 뿐 감시 목적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