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에 훈장 전해준 '밀리터리 덕후'…"잊힌 역사 일깨워 약속 지켜야죠"

입력
2024.02.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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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유물 블로거 박종래씨 인터뷰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어요. 1호 태극무공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국방부는 지난달 26일 초대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에게 '대한민국 일등무공훈장(태극무공훈장)'을 전달했다. 1950년 1호 태극무공훈장 수여자로 결정된 지 74년 만에 '실물' 훈장이 맥아더 장군에게 전해진 것이다. 당시 정부는 전쟁이 한창이었던 탓에 훈장을 제작할 여력이 없어 '증서'만을 전달했다.

국방부는 "시민 제보로 맥아더기념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등 관련 기관과 협업해 태극무공훈장 실물을 제작했다"며 "제보한 시민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74년 전 약속을 지키는 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시민'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감사장의 주인공은 서울 동작구에 사는 30대 군사물품 마니아인 박종래씨와 그의 포스팅을 보고 정부에 제보한 한 시민. 한국일보는 1일 박씨로부터 맥아더 장군의 태극무공훈장을 찾아 나선 배경과 이유를 들어봤다. 박씨는 얼굴과 정확한 나이를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보통신(IT)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박씨는 소위 '밀덕'(밀리터리 마니아)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군용품과 전쟁 관련 물품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알뜰살뜰 모아온 용품들을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2002년 서독 국경경비대(BGS) 철모를 시작으로 지난달 대한제국 융희2년(1908년) 발행된 훈6등 태극장 증서에 이르기까지 군사 관련 물품이 300점 정도 된다고 한다.

박씨는 맥아더 장군의 태극무공훈장을 찾아 나선 배경을 '호기심'이라고 했다. 2017년 6·25 전쟁 당시 제24사단장을 맡았던 블랙셔 브라이언 장군에게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을 수집한 게 발단. '최초의 태극무공훈장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듬해 맥아더기념관에 실물 사진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기념관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뒤져, 추후 훈장 제작 시 임시로 수여했던 건국공로훈장 1등급과 교환하기로 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호기심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왜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그러다 1971년 언론 기사에서 "불탄 서울 시내에서 훈장을 구할 길이 없어 '타이프'로 찍은 표창상 사본만 수여했다" "그해 12월23일 장기영씨(당시 체신부 장관)가 동경으로 건너가 정식 훈장을 원수에게 달아주었다"는 대목을 발견했다.

박씨의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태극무공훈장은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다는 점 △맥아더 장군이 이후에도 방한을 한 적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추적을 이어갔다. 그리고 건국공로훈장이 1964년 맥아더 장군 사망을 추모하는 뜻으로 전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추적의 과정을 블로그 등에 상세하게 소개했고, 그 글이 마침내 정부에 전달된 것이다.

박씨는 이번 일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 찾기'에 기여해왔다. 2020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품 자료집'을 편찬할 때 박씨가 며칠 밤을 새워가며 피복류 전체에 대한 설명을 저술했다. 2022년 11월 전쟁기념관에 '6·25전쟁 아카이브센터'를 개관할 땐 태극무공훈장을 대여하고, 박씨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고증한 전투복이 제작되기도 했다.

박씨는 "과거에 잊힌 역사를 상기시켜주고 약속을 이행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일을 통해 사회적 변화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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