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보험·공제 가입 시 의료사고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하자, 사고 책임 입증 주체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의료사고를 입증할 책임은 환자에게 있는데, 입증 주체가 그대로 유지되면 피해자 권리보호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의무화해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면 공소제기를 못하는 게 골자다. 필수의료 업무에 대해서는 과실치사상죄를 감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필수의료 기피 원인으로 지목되는 의료사고 가능성과 그에 따른 소송·소환조사 부담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단 환자와 합의하지 못했거나 조정·중재에 응하지 않는다면 특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2일 복지부 관계자는 "피해자가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의료분쟁 조정, 중재, 감정 제도를 공정하게 혁신할 것"이라며 "의료진들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환자에게도 질 좋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업무상과실치상죄와 중과실치상죄에도 형사처벌 특례를 인정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예로 들며 의료 사망사고에도 형사처벌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부도 추후 논의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는 "교통사고특례법은 전 국민이 대상이지만 의료사고특례법은 의료진만 혜택을 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차이는 책임 입증 주체다. 교통사고는 사고 원인을 운전자 과실로 추정하되 운전자가 사람을 해칠 고의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반면 의료사고는 피해자인 환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환자는 진료기록 접근이 제한되고 전문성이 부족해 소송으로 갈 경우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2∼2020년 의료과오 관련 1심 민사재판 8,242건(연평균 916건) 중 원고(환자) 승소는 0.9%인 78건(연평균 9건)에 불과했다.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는 의료사고특례법 도입에 앞서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료진에게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지금도 분쟁 조정이나 소송이 환자에게 불리한데 의료진에게 형사책임 면죄부까지 준다면 환자는 더욱더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며 "의료진 처벌 목적이 아니라 의료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사고 입증 책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부에서도 의사들이 직업적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갖고 국민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의사가 돈벌이로 의료행위를 하는 현실에서 특례법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바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의료계 공공성을 회복하고 환자에게 충분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보장체계를 갖춰야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