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어달라"… 국회 앞에서 북 울린 해병대 생존장병 어머니

입력
2024.01.31 17:06
고 채수근 상병 사건 국정조사 촉구
"군도, 경찰도 못 믿어… 국회뿐"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에서 수색 작전 중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생존 장병 A씨의 어머니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A씨는 채 상병과 함께 내성천에 들어갔던 3명 중 한 명으로 채 상병과 함께 50~80m가량 떠내려가다 구조됐다.

군인권센터와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 사건 진상규명TF는 3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국정조사가 개시 요건을 갖췄음에도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3개월째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김 의장의 결단을 탄원한다"며 국정조사 개시를 촉구했다.

생존 장병 A씨의 어머니 B씨는 탄원문에서 "급류가 흐르는 하천 속에 우리 아이들이 안전 장비 하나 없이 들어가게 된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라며 "누가,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B씨는 "이 나라는 사고 발생 200일이 넘도록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밝히지 못한 게 아니고, 밝히지 않은 것"이라며 "군도, 경찰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국회뿐"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생존 장병 A씨는 지난해 10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했다. 이에 B씨는 "병사가 사단장을 고소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느냐"며 "그렇게 용기 냈던 아들이 제게 '그렇게 했는데 바뀌는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엄마이기 이전에 이 나라를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덧붙였다.

B씨는 30여 차례 '탄원의 북'을 울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2014년 군부대 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고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2016년 급성 백혈병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숨진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등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씨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아들딸이 죽어야 악습의 굴레가 끝나는 것이냐"면서 "군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아이의 절규가 국정조사의 명분"이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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