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현에 사는 75세 남성 다카키 마슈의 센류(일본의 짧은 전통 정형시) 전문이다. 그가 지은 시를 제목으로 한 일본 노인들의 ‘실버 센류’ 모음집인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 한국에서 때 아닌 인기를 끌고 있다. ‘종이랑 펜 / 찾는 사이에 / 쓸 말 까먹네’ (야마모토 류소·72), ‘세 시간이나 / 기다렸다 들은 병명 / 노환입니다’(오하라 시즈코·65) 등 노인의 일상과 애환을 담은 짧은 시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샀다.
책은 출간 일주일 만인 1월 셋째 주 기준 교보문고 시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일본어 기준으로 '다섯 글자-일곱 글자-다섯 글자'의 총 17글자로 쓰는 센류는 일본에선 대중적인 장르다.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여는 센류 공모전에 해마다 1만여 편이 접수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같은 전통 정형시인 하이쿠에 비해 형식이 자유로워 세태 풍자에 주로 쓰인다.
'사랑인 줄...'은 센류 공모전 수상작 가운데 88점을 묶어냈다. 번역 과정에서 5-7-5라는 센류의 형식은 사라졌지만, 특유의 ‘매콤함’은 여전하다. ‘분위기 보고 / 노망난 척해서 / 위기 넘긴다’는 71세 일본 여성의 시는 웃어도 되는 건지 아찔할 정도다. ‘혼자 사는 노인 / 가전제품 음성 안내에 / 대답을 한다’ ‘손주 목소리 / 부부 둘이서 / 수화기에 뺨을 맞댄다’ 등 외로운 노년의 일상을 다룬 작품에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웃고 우는 데서 그치지는 않는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포착하기 어려운 일상의 편린을 짧은 문장으로 예리하게 벼린 시들은 아직 노년에 닿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의 발판이 된다. 같은 세대의 독자에게는 실감으로 다가온다.
일본에서는 관련 시리즈 13권의 누적 판매량이 90만 부가 넘지만, 출판계에선 한국에서 반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5년 전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국내 출판을 결심한 서선행 포레스트북스 편집자는 “(한국에서)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로 한때 뜻을 접어야 했다. 그가 출판사를 옮기고야 출간된 책의 구매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53.4%로 절반이 넘는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관심에 놀랐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어판을 사고 싶다는 일본 측 연락이 온다고 한다. 센류를 쓴 노인들은 한국에서 자기 시가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긴급 회의’를 열기도 했다. 포레스트북스는 센류 모음집 추가 출간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