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입국하려던 한국인이 '대만과 중국을 별개 국가로 표시한 지도'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중국 세관 당국에 한때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거나 위험성이 있지 않은데도 외국인 입국자의 개인 소지품을 문제 삼은 건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 외교 당국도 구체적인 경위 파악에 나섰다.
25일 주선양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전날 대한항공 여객기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타오센공항에 도착한 70대 한국인 정모씨는 보안 검색 과정에서 뜻밖의 제지를 받았다. 중국 세관원들은 정씨의 여행용 캐리어를 열라고 요구한 뒤, 다이어리에 부착된 세계 지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로 30㎝, 세로 20㎝ 크기인 이 지도엔 대만이 '타이완'으로 적혀 있었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인 것처럼 표기돼 있었던 셈이다.
중국 세관원들은 '중국의 한 개 성(省)인 대만이 독립국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정씨를 별도 사무실로 데려가 억류했다. 정씨는 "다이어리에 이런 지도가 붙어 있는 걸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했으나, 세관원들한테 통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이들은 '지도 속 시짱(티베트)자치구 일대의 접경도 모호하게 표시돼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풀려난 건 약 한 시간 후쯤이었다. 다만 세관원들은 다이어리에서 해당 지도를 뜯어내고 물품 보관증을 써 준 뒤, "귀국할 때 찾아가라"고 말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이 개별 국가로 표시된 지도의 반입을 규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해관총서(세관)는 저장성 닝보 공항 세관이 입국객 수하물에서 지도를 포함한 도서 4권을 압수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도서는 중국 관광 가이드북이었는데, 세관은 "문제의 지도가 중국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했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4, 5월에도 상하이 세관과 톈진 세관은 대만을 '국가'로 표시한 지도가 포함된 서적 여러 권을 압수했다.
한국인이 유사한 봉변을 당하자, 한국 외교 당국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선양 총영사관 관계자는 "지도를 문제 삼아 입국객을 '억류'까지 시킨 건 근래 없었던 일"이라며 "중국 측 조치가 과도한 것으로 확인되면 재발 방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것인지, 새로운 정책 기류인지에 대해선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파악해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외교·정치적 문제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반 관광객에게 엄격히 적용하는 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월 3년간 이어진 제로코로나 정책을 폐지한 뒤, 관광객의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 중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동기 대비 5.5% 수준인 47만여 명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