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 가스 사형'이 '독극물 주입'보다 인도적?… 미국 사형 방식 도마 위에

입력
2024.01.2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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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앨라배마주, 첫 '질소 가스 사형' 예정
전 세계 첫 시도에… "생체실험 하나" 비판
"가스 사형은 고문...'고통 없는 죽음' 없어"

'교수형, 총살, 감전사, 독극물 주사, 가스실…'

이 가운데 가장 인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라는 게 있는 걸까.

미국 앨라배마주(州)의 한 사형수가 산소 대신 질소 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의 처형을 앞두고 있다. 실제로 집행된다면 전 세계 최초로 '질소 가스 사형'을 당하게 된다. 주 당국은 "가장 인도적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생체 실험'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약물 주입 실패하자 이번엔 질소 가스 처형

2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날 자신의 사형 집행을 중단해 달라는 케네스 유진 스미스(58)의 마지막 청원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1988년 청부 살인을 저질러 30년 넘게 복역 중인 스미스에 대한 사형 집행은 25일부터 30시간 내에 이뤄져야 한다.

스미스는 보험금을 노린 목사 찰스 세넷의 청부로 1,000달러(약 133만 원)를 받고 세넷의 아내를 살해했다. 배심원단은 11 대 1로 종신형을 권고했지만,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다. 공범인 존 포레스트 파커는 2010년 6월 약물 주입 방식으로 처형됐다.

스미스는 이미 2022년 11월 사형 집행 시도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앨라배마주 당국은 그에게 약물을 주입하려 했지만 주삿바늘을 꽂을 정맥을 잡지 못해 집행을 중단했다. 이후 주 당국은 독극물 대신 질소 가스 주입으로 처형 방식을 바꿨다. 미국 ABC방송에 따르면 질소 가스 사형은 침대에 묶인 사형수에게 튜브가 달린 마스크를 통해 100% 질소를 공급해 저산소증으로 사망케 하는 방법이다.

스티브 마셜 주 법무장관은 "아마도 지금까지 고안된 것 중 가장 인도적인 처형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질소 가스 사형은 앨라배마와 오클라호마·미시시피 등 3개 주에서만 허용된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집행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생체실험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질소 가스 사형에 동의했던 스미스도 이 같은 절차가 공개된 뒤 입장을 바꿨다. 스미스 측은 "질소 가스 사형은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잔인한 형벌을 금지하는 미 수정헌법 제8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유엔 전문가들도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질소 가스 사형은) 저산소증으로 인한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죽음을 초래한다"며 주 당국에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사형제 폐지라는 전 세계 흐름을 거스르면서 '실험적 사형'을 집행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이다.




"가스 사형은 고문… '고통 없는 죽음'은 없다"

질소 가스 사형이 독극물 주사 방식보다 인도적이라거나 고통이 없다는 증거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처음 시도되는 만큼 "몇 초 내 의식을 잃고, 몇 분 안에 사망할 것"이라는 주 당국의 예상대로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방식은 미국수의학협회(AVMA)의 포유류 안락사 지침에서도 금지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짚었다.

데보라 데노 미국 포드햄대 로스쿨 교수는 "모든 가스 처형에는 일종의 고문이 포함돼 있다"고 꼬집었다. 데노 교수는 "사형수는 의식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고통이 분명하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사형 집행 방법 중 최악이고 가장 잔인하다"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무엇보다 '고통 없는 죽음'은 없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조엘 지봇 미국 에모리대 의과대 마취과 부교수는 "(현대에 가장 많은 빈도로 이뤄지는 사형 집행 방법인) 독극물 주사는 잠에 빠지듯 즉각적인 죽음으로 이어져 인도적 처형 형태로 여겨졌지만, 평화로운 죽음이라는 것은 신화일 뿐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ABC에 말했다. 2016년 독극물 주사로 처형된 수감자들의 부검 보고서를 연구한 결과, 이들의 폐에 체액이 쌓여 호흡이 어려워지는 폐부종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익사에 가까운 죽음"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제프리 키르히마이어 미국 뉴욕시립대 법대 교수는 "인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이는 역사적으로 사형 집행 방법의 변화를 통해 증명된 것"이라며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처형하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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