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심각한 지방 경제난을 인정한 뒤 이를 '정치적 문제'로 규정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당 간부들과 경제기관들의 소극적 태도를 질타하며 열흘 전 내놓았던 '지방발전 20X10 정책' 이행 의지를 재천명했다. 도농 간 경제 격차의 책임을 중간 간부들에게 돌리면서 자신의 신규 정책에 대한 지방 주민들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은 묘향산에서 23일과 24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9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다고 2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방공업 발전을 주제로 한 이번 회의에서 "지방경제가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하며 "당과 정부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라고 질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책임을 당정으로 돌렸다. "현실적이며 혁명적인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말로 굼때고 있는" 당 내 정책지도부서와 경제기관을 콕 찍어 비판한 뒤 "조건이 유리한 몇 곳을 제외한 나머지 시·군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안으로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내세웠다.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공개한 새로운 방향의 정책으로, 김 위원장을 이를 '거대한 변혁적 노선' '거창한 혁명' '세기적 숙원 사업'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정책의 골자는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전국 인민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지방공업 발전은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면서도 "나는 기어이 지방공업 발전의 실제적인 변화를 이룩해 인민들의 기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대북 관련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을 '치밀한 전략'으로 분석했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강경한 메시지를 통해 관계 정립을 한 뒤 이번엔 내치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체제 결속과 지방 주민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고,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중간 간부 수탈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하면서 주민들의 신뢰를 확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지방 발전 전략은 선대와 차별화하는 '제2 건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 실장은 "당정의 과오를 질타하는 식의 통치 행태는 김일성이 50~60년대 보였던 방식이자 독재국가들이 건국 초기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택하는 방편"이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을 뛰어넘어, 건국 수반으로의 지위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의를 평양이 아닌 묘향산에서 열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평안남·북도, 자강도에 걸쳐 있는 묘향산은 북한 영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무엇보다 혁명의 성지이자 선대가 국정을 구상하고 외빈들을 만나 국가의 명운을 논의했던 상징적 장소다.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에 특히 '인민'이 강조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민의 복리 증진과 권익 보호', '인민의 웃음과 행복'을 수차례 반복했고, 간부들에게는 "수천만 인민들의 크나큰 믿음을 생명의 명줄로 간직하라"고도 했다. 정 실장은 "이는 당과 정부에 비해 주민들에 대한 리더십이 불안하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라며 "결국 반체제 성향이 성장할 우려가 있는 지방 민심을 포섭하기 위한 정치적 발표"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