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의 한 카페로 김영해(68)씨가 들어왔다. 다리 한쪽이 불편한 듯 느린 걸음이었다. 그는 쌀알이 달린 벼부터 내밀었다. “제가 14년간 연구해 개발한 ‘금성 가바쌀’입니다.”
김씨가 꺼낸 ‘벼’는 지난해 6월 국립종자원 품종보호출원을 완료한 신품종 쌀(벼)이다. 국립종자원에 제출된 시험재배 성적표에 따르면, 금성 가바쌀은 병해충에 강해 평균 쌀 수확량이 10아르(1,000㎡)당 574㎏으로, 일반 벼에 비해 10%가량 많다. 가바(GABA)는 뇌세포 대사기능 촉진 신경안정물질로, 성인병 예방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성 가바쌀은 국제공인기관인 한국고분자시험연구소로부터 가바 성분이 함유된 쌀로 공인받았다.
금성 가바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포천에서 2대째 논농사를 짓으며 농협에서 근무하던 김씨는 2009년부터 신품종 개발에 나섰고, 2014년 농협 상임이사로 퇴직한 뒤에는 시험 재배까지 뛰어들었다. 42년을 ‘농협맨’으로 평탄하게 살아온 그에게 ‘가난을 면치 못하는 농촌의 현실’은 늘 마음의 빚이었다. 김씨는 “성실하게 살던 농업인들이 병해충과 자연재해로 쌀농사를 망치고 빚더미에 허덕이는 걸 보고 개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일본, 베트남 등에서 우수 종자를 기증받아 우리나라 종자와 자연교잡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거듭했다. 밥맛 좋기로 이름난 기존 ‘금성벼’에 기능성을 접목한 신품종 개발이 목표였다. 처음엔 이른 시기 수확하는 올벼(조생종 벼)로 개발하려다 기후 특성상 전국 보급이 어려워 전략을 다시 짜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다. 2018년 10월엔 날벼락 같은 일도 닥쳤다. 피로가 겹친 탓에 뇌출혈이 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포천과 경북 예천, 충북 청주 등에서 4년간 친환경 시험 재배를 통해 신규성과 안정성, 균일성을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이라 안타까움은 더 컸다.
김씨는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2개월간 수술을 받는 등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는 “몸도 가눌 수 없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의식을 되찾은 뒤에도 후유증 탓에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
연이은 시련에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재활에만 집중하라”는 가족 만류에도 다시 논으로 향했다. 다시 힘을 내 2021년 기어이 시험 재배를 마쳤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신품종은 낱알 수가 많고 줄기가 굵어 쓰러짐이나 도열병 등 병해충에 강해 수확량이 풍부했다. 국립종자원의 2년에 걸친 실증 재배를 통과하며 올해부터는 원하는 농가에 보급될 수 있게 됐다. 개인이 벼 보호출원에 성공한 사례는 전국에 10명 미만으로 드문 일이다.
김씨는 “1970년대 기적의 볍씨 ‘통일벼’가 서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었듯 금성 가바쌀이 농촌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며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나,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기에 뇌출혈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