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드리니까 계약금 1,000만 원만 내면 아파트 입주 전까지 돈 들어갈 일이 없어요. 입주할 때쯤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냥 팔고 나오셔도 되고요."
요즘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 흥행을 위해 당근책을 쏟아내고 있다. 어떻게든 아파트 계약률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지책이다. 수요자에게 이런 건설사 제안이 솔깃하겠지만, 최근 자금난으로 문을 닫는 건설사가 늘어나는 터라 혜택만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나름 청약 분위기가 좋은 서울·수도권에서도 계약금 정액제와 중도금 전액 무이자 혜택을 내건 분양 단지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 김포시 고촌읍에 들어서는 고촌센트럴자이는 1차 계약금 1,000만 원 정액제와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내걸었고,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힐스테이트 수원파크포레' 역시 같은 혜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들 혜택이 합쳐지면 계약자의 자금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아파트 계약자는 3번에 걸쳐 돈을 낸다.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낸 뒤 아파트를 짓는 2년여간 60%를 중도금으로 나눠 내고 입주 때 나머지 30%를 잔금으로 치르는 방식이다.
분양가 7억 원짜리 아파트라면 4억2,000만 원을 중도금으로 내야 한다. 이를 전부 중도금대출로 마련한다고 가정하면 준공기간 2년여간 대략 2,100여만 원의 이자(금리 연 5% 가정)를 낸다. 그런데 중도금 무이자 단지에선 2,100여만 원을 건설사가 전부 부담한다. 10% 계약금만 내면 입주 때까지 추가로 낼 돈이 없다. 최근 일부 단지는 계약금 정액제와 중도금 무이자에 더해 발코니 무상 확장, 현금 지급, 잔금 납부 유예 같은 혜택을 얹어주기도 한다.
이는 건설사에겐 상당한 비용 부담이다. 가령 1,000가구 대단지라면 단순 계산해도 중도금 무이자로 나가는 비용만 210억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이런 파격 혜택을 내거는 건 분양사업 특성상 어떻게든 계약률을 끌어올려 자금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아파트 계약서에 서명해야 그 사람 명의로 은행 대출이 실행된다. 건설사는 이 돈이 들어와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첫 단계부터 어그러지면 모든 비용을 건설사가 부담하며 공사를 해야 한다. 지금 같은 분양시장 침체기에 이런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다.
문제는 건설사가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중도금 대출을 못 내면 이 모든 부담이 계약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최근 광주·전남 중견 건설사인 한국건설이 은행에 중도금 이자를 내지 못하자, 금융권은 아파트 계약자에게 이자 상환(월 70만 원)을 요구하는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30가구 이상을 지을 땐 반드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에 가입해야 하지만 HUG 보증은 건설사가 부도난 경우 아파트 공사만 책임지지 건설사가 내건 각종 부가 혜택은 보증하지 않는다.
지난해 1~8월 HUG의 중도금대출 보증 사고 금액은 1,200억 원 수준으로 전년(1,224억 원) 수준에 육박, 상승세가 가파르다. 여기엔 중도금 무이자를 내건 건설사가 중도금 이자를 내지 못해 보증 사고로 이어진 사례도 포함돼 있다는 게 HUG 설명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대형 건설사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금력이 좋지 못한 건설사가 대대적인 혜택을 내건다면 리스크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마케팅 비용이 분양가에 포함되는 만큼 마케팅이 무조건 많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