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컬링의 성지’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당시 컬링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팀 킴(김은정 김영미 김선영 김경애 김초희)’ 멤버 중 4명이 의성여중·고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팀 킴’은 강릉시청 컬링팀으로 소속을 옮겼지만,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고향에서 컬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밀알이 됐다. 선배들이 남긴 씨앗을 싹 틔우고 가꿔온 ‘팀 킴’의 모교 후배들이 19일 개막하는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추수에 나선다.
“언니들이 은메달을 목에 건 장소에서 금메달을 딸래요.”
컬링 4인조 혼성 대표선수로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장유빈·이소원(이상 의성여고 1년)은 10일 경북 의성컬링센터에서 본보와 만나 “6년 전에는 TV로 ’팀 킴’ 언니들의 활약을 지켜봤는데, 이제 우리가 태극마크를 달고 언니들이 경기했던 장소에 서게 돼 영광”이라며 “1차 목표는 메달권 진입이지만, 최종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이들의 컬링 입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이들도 ‘팀 킴’이다. 의성태생인 유빈양은 “평창 올림픽 당시 동네 사람들이 ‘누구 누구네 집 딸이 올림픽에 나온다’고 말하며 다같이 의성여고 체육관에 모여 '팀 킴'을 응원했다”며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이때 컬링이라는 종목을 알게 됐고,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 권유로 컬링부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 군포에서 거주하다 중학교 1학년때 의성으로 이사 온 소원양은 “학교 선생님이 컬링부 입부를 권했는데, 처음에는 무슨 운동인지 잘 몰랐다”며 “그런데 선생님이 ‘영미~ 영미~!’라는 구호를 외치자 머릿속으로 컬링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 당시 ‘팀 킴’의 활약이 컬링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처음부터 ‘팀 킴’과 같은 국가대표를 꿈꾼 건 아니다. 유빈양은 “원래는 (체대 입시를 위해) 생활기록부를 채우려는 목적이 컸다”며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해보니 컬링이 너무 좋아졌고, 그때부터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소원양 역시 “처음에는 취미로 하려고 했는데, 운동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국가대표가 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됐다”며 “의성으로 이사오기 전 태권도를 했는데 당시에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 ‘컬링을 제대로 해서 국가대표가 돼보자’는 목표가 생겼다”고 전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다소 늦게 컬링에 입문한 유빈양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처음 컬링부에 들어왔을 때 동생들보다도 실력이 떨어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또 작전을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며 “훈련시간 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컬링장에 나와서 고등학교 언니들과 연습했고, 집에서도 작전공부를 하면서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또 다른 변수가 존재했다. 남녀 단체전이 나뉘어 있는 성인 올림픽과 달리 청소년올림픽에는 혼성 경기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기존 팀원들이 아닌 김대현·권준이(이상 의성고 2년)와 ‘팀 의성’을 이뤄 지난해 9월 대표 선발전에 나섰다. 호흡을 맞춘 기간도 약 2주밖에 되지 않았다. 기존 팀원들과 함께 참가한 대회일정을 먼저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빈양은 “처음 모이자마자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의성고와 의성여고 컬링부 모두 의성컬링센터에서 훈련을 해 안면이 있었고,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빈양은 “팀원들 모두 청소년대표팀은 평생 한 번 밖에 못 나간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도 남달랐다”고 전했다.
실제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실업팀과의 맞대결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습경기에서 승리했고, 상대팀 경기력도 유튜브를 통해 분석하며 꼼꼼하게 대회를 준비했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팀 의성’은 선발전에서 6전 전승을 거두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가족들에게도 큰 자랑거리다. 유빈양과 소원양 모두 “경기가 끝나자마자 가족들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며 “가족들의 축하를 들으니 올림픽에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합숙 훈련에 들어간다. 생애 첫 선수촌 입성인 만큼 기대에 부풀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설렘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소 엉뚱했다. 소원양은 “선수촌 밥이 맛있다고 해서 정말 기대가 크다”며 웃은 뒤 “좋은 환경을 제공받는 만큼 잘 준비해서 꼭 메달권에 들겠다”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한국일보·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조직위원회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