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정보로 500억 꿀꺽한 임원'... 증권사 부동산 PF 도덕적 해이 만연

입력
2024.01.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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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으로 700억 빌려주고 40억 받아
직원 시켜 매매차익... 회사 자금 연루
증권사 5곳 내부통제 '낙제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도덕적 해이가 증권사 전반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메리츠·하이투자·다올투자·이베스트투자·현대차증권에 대해 부동산 PF 기획검사를 실시해 임직원 사익추구 및 증권사 내부통제 취약점 등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자산운용사·금융투자사 등에서 대주주와 임직원 사익추구 행위 등을 적발한 데 이어 증권사에서도 비위 사실이 다수 드러난 것이다.

증권사 직원은 주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 A증권사 임원은 PF 업무를 담당하며 알아낸 정보를 이용, 본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법인을 통해 500억 원가량을 빼돌렸다. 이해관계자가 많고 복잡한 부동산 PF 구조를 악용해 자금 흐름 사이에 본인 회사를 끼워 넣는 방식을 취했다. 해당 임원은 사설 고리대금 행위까지 저질렀는데,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시행사들에 5건에 걸쳐 700억 원 상당을 사적으로 대여해 주고 수수료와 이자 명목으로 40억 원가량을 받아냈다. 이 중 약 600억 원은 금리가 수백%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이 직원들을 시켜 수백억 원을 빼돌린 사건도 발각됐다. B증권사 한 임원은 업무 과정에서 부동산 임대 PF 정보를 알아낸 뒤 가족법인을 통해 부동산 11건(약 900억 원)을 취득·임대했고, 이 중 3건을 처분해 100억 원 상당의 매매차익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이 대출을 알선했는데, 그 대가로 해당 직원 가족에게 10억 원이 간접적으로 지급됐다. 처분된 부동산 중 한 건은 상장사가 매수하면서 전환사채(CB)를 발행했는데, 이 CB를 부하 직원들이 도맡아 인수·주선했으며 B증권사 고유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증권사 5곳 모두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PF 대출 과정에서 대상 회사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문제없이 승인됐고, 한 PF 사업장의 유동성 자금이 부족해지자 임의로 다른 사업장에서 돈을 빼온 사례도 있었다. 이 밖에 10억 원 필요하다던 용역비가 40억 원 넘게 지출됐음에도 용역계약서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불법행위가 확인된 임직원은 수사기관에 통보했으며, 해당 5개 증권사에 대해서는 제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른 증권사에서도 비슷한 위규행위가 있을 거라고 보고 집중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부동산 PF 관련 업무에 대해 금융권 전체가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재발 방지책을 고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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