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의 국회 본회의 재의결이 9일 불발됐다. 총선을 92일 앞두고 상정이 미뤄진 데 대해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정략적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내부적으론 논란 장기화 부담이 역력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8년 가까이 공석인 대통령 특별감찰관(특감) 카드를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그간의 상황에 비춰보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윤재옥 원내대표 주재로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거부권 정국 등 현안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선 김 여사 일정 등을 관리할 제2부속실 설치뿐만 아니라 특감 임명 및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단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쌍특검 문제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 제2부속실이나 특감 임명, 대통령 입장 표명 등 언급이 나왔다"고 전했다.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전날 SBS라디오에서 "김 여사 리스크를 잠재울 수 있는 뚜렷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제2부속실과 특감은 당연하다"고 언급한 부분도 당내에서 회자됐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한 5일 "(특감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면 지명하겠다"고 밝혔는데,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함께 추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특감이 북한인권재단과 맞물린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8, 9월 때와 유사하다.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공석인 특감 임명 및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요구했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 등 공수처의 정상적 출범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후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둘러싸고 여야 간 잡음이 이어지면서 특감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또한 무산됐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민주당이 받아들이기 힘든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또다시 조건으로 내건 자체가 추진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의 비위행위 감찰 목적으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도입된 특감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도 공석이었다. 대통령실에 대한 조사·감찰권을 가진 특감을 임명한다는 데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이 집권 세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사람(특감)이 와야 불법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데, 너무 이상한 사람이 와서 난리를 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석수 특감이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던 전례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특히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특감 임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국민의힘 판단이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 국민의힘도 특감 임명에 한발 더 다가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는 현재 1명인 재단 상근이사를 여야 각각 1명씩 추천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이뤘다. 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 추천을 할 수 있단 입장이다. 외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해당 안이 통과되면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추천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국민의힘 관계자는 "논의가 잘 되면 둘 다 같이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