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의 영광' 이어갈 대관령 썰매 5남매… "후회 없는 질주하겠다"

입력
2024.01.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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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동계 올림픽 썰매 종목 '첫 메달' 기대
소재환, 트랙 300번 이상 타며 주행 가다듬어
증량·체력훈련 등 준비 과정 쉽지 않아...
신연수 "힘든 시간 견딘 만큼 잘할 것"

8일 오전 9시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 센터 스타트 포인트는 이른 아침임에도 훈련을 준비하는 선수들과 스태프들로 북적였다. 기온이 최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며 혹독한 추위가 밀려온 탓인지 대관령 썰매 5남매 소재환, 최시연(이하 봅슬레이), 신연수, 김예림, 정예은(이하 스켈레톤) 선수 얼굴에 다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트랙에 올라서자 그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출발을 앞두고 트랙을 바라보며 입과 눈, 몸으로 주행을 그려볼 때는 성인 선수 못지않은 강렬한 에너지와 매서운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주행 시간은 길어야 1분 30여 초. 19일 개막하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을 앞두고 이 짧은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수개월여를 힘차게 달려온 썰매 5남매는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며 "후회 없이 질주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트랙 최소 300번 이상... '안방 어드밴티지' 확실

봅슬레이 모노봅(개인종목)에서 금메달이 유력한 소재환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주행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소재환은 "스타트도 중요하지만, 메달을 위해선 주행도 중요하다"며 "다른 선수들과 같게 타면 기록도 비슷하게 나오니 조금이라도 다르게 타기 위해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트랙을 최소 300번 이상 탔다.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선수들은 경기 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이 제공하는 썰매를 무작위로 받아 타기 때문에 썰매 성능보다는 트랙을 얼마나 달려봤는지가 결과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국내 선수들에겐 '안방 어드밴티지'가 확실하다. 소재환 외 다른 선수들도 트랙을 최소 200번 이상 달렸다. 트랙을 몸에 문신처럼 새긴 셈이다. 소재환은 "트랙 외에도 시차적응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나 음식을 가릴 게 없다는 점도 국내 개최 올림픽의 장점"이라며 "시설도 외국보다 국내가 더 좋다"고 말했다.


증량·체력훈련 쉽지 않아... "어려운 시간 견뎠으니 더 잘할 것"

썰매 종목 훈련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단연 증량이다. 최시연은 "주행 시 가속도를 위해 선수 몸무게가 일정 정도 이상 나가야 하는데, 간식 포함 하루 4, 5끼를 챙겨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고민스러웠다"고 털어놨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인 '아이언맨' 윤성빈도 대회를 앞두고 최대 8끼씩 먹으며 증량을 했지만, 썰매 5남매의 경우 아직 미성년자인 데다 스포츠윤리상 맞지 않는 측면이 있어 그렇게까진 하지 않는다. 대신 썰매에 5㎏ 단위로 납을 붙여 부족한 무게를 채운다.

체력 훈련도 결코 쉽지 않았다. 신연수는 "작년 여름 비시즌 기간 동안 체력훈련에 매진했는데, 중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어려운 시간을 견뎌온 만큼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금메달이 목표인 그는 "처음 스켈레톤을 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너무 위험해 보인다'며 반대하셨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해주고 있다"며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육상·패들보드 등 기존 종목 도움 많이 돼"

썰매 5남매의 특이점은 정예은을 제외한 4명이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점이다. 16세까지 육상선수로 활약하다 2022년부터 스켈레톤에 입문한 김예림은 "썰매는 스타트에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게 중요하다 보니 육상선수 출신들이 많은 것 같다"며 "육상 때 했던 것들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에 종목 전환 후에도 육상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시즌에는 육상과 웨이트를 병행하고, 시즌에는 웨이트 또는 육상 훈련 중 하나를 택하는 식이다.

5명 중 유일하게 패들보드를 탔던 정예은 또한 이전 종목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정예은은 "스켈레톤에서 썰매에 탑승할 때 가슴부터 쏟아져야 하는데, 패들보드도 마찬가지"라며 "자세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서 메달 획득 시 '국내 첫 썰매 메달'

썰매 종목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윤성빈이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따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썰매 5남매는 그 찬란한 영광을 이어갈 차세대 주자다. 국내 유일의 썰매부를 자랑하는 상지대관령고등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동고동락하는 이들은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국내 첫 썰매 메달에 도전한다.

앞서 정승기가 2016년 네덜란드 릴레함메르 동계청소년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아쉽게도 8위에 그쳐 메달을 놓쳤다. 이번엔 이미 수차례 국제 대회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소재환 등이 금빛 질주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첫 메달'을 기대해볼 만하다. 봅슬레이·스켈레톤 경기는 22, 23일에 열린다.


※한국일보·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조직위원회 공동 기획

평창 =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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