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정책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반도체 산업만큼은 정권에 상관없이 긴 안목으로 투자를 결정하라는 국책 연구 기관의 조언이 나왔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를 향한 규제가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본격화했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9년부터 이미 미국 투자를 대폭 늘렸다는 분석이다.
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등장한 2021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2년 반 동안 미국을 향해 14건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이뤄졌다. 그러나 집권 전과 비교해 독일, 한국, 영국의 투자 규모(건수 기준)는 비슷했고 일본은 오히려 줄었다. 대만과 네덜란드만 눈에 띄게 투자를 늘렸다.
연구원은 먼저 백악관이 밝힌 바이든 집권 기간 반도체 부문 FDI와 외국인직접투자 조사기관 'fDi 마켓(Market)'의 미국 내 반도체 FDI 공시 자료를 비교했다. 그 결과 2003~2020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 건수는 연평균 △독일‧일본 각 1.4 △영국 1.1 △한국 1 △대만 0.8 △네덜란드 0.3이었다.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 기업들의 미국 투자 건수를 연평균으로 계산한 결과 △독일‧대만‧한국 1.2 △네덜란드‧영국 0.8 △일본 0.4이었다.
바이든 정부 등장 전후로 반도체 분야에서 이뤄진 미국 투자가 눈에 띄는 차이가 없는 이유는 반도체 기업들이 2019년부터 미국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래 2년 반 동안 해외 기업이 미국에서 진행한 반도체 투자(14건)는 2020~2023년 연평균인 2.5배(2년 반)인 22.5건에 못 미친다"고 짚었다. 주요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투자는 "바이든 정부 출범 전부터 건수와 금액에서 모두 내리막을 보여왔다."
미국을 향한 투자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①먼저 매출이다. 보고서는 "이번 변화는 지역별 경기 변동, 반도체 수요(매출) 변화 등 '수요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부터 이미 중국 반도체 수요가 줄고 미국 반도체 수요는 늘었고 이 영향으로 바이든 정부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더 빨라졌다는 말이다.
기업의 실적 보고서에 중국 경제성장률, 미국 정책 변화 등 각종 변수를 대입한 결과 "2019~23년 상반기까지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서 거둔 매출 비중은 감소했다"며 "반면 중국 외 지역의 비중은 늘었고 이중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게 연구원의 진단이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공식화한 2022년 10월 이전부터 중국에서 반도체로 번 매출이 꾸준히 줄고 있었다는 말이다.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기업 매출이 지역 및 국가 간 분포에서 달라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경기 침체, 미국의 반도체 수요 증가 등 수요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투자와 매출이 줄고 미국에서 는 건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 정책 전에 생긴 흐름인데 최근 강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②두 번째는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다. 연구원은 "설령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투자, 매출 감소가) 정책의 영향이라고 하더라도 바이든 정부 정책의 직접적 영향이라기보다 기업들은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런 정책이 펼쳐지리라고 예상하고 대응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은 (미국 대선) 후보 간 입장 차이가 매우 큰 반면 반도체 지향점은 큰 틀에서 같다"며 "한국 기업과 정부는 단기적 변화를 우려하기보다 장기적인 흐름에 대응하며 의사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