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업계 2위까지 올랐던 남양유업을 잘못된 판단과 독단적 경영으로 3위로 내려앉게 만들었던 홍원식 회장이 결국 물러나게 됐다. 홍 회장 일가가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와 벌인 경영권 분쟁에서 지면서 불명예 퇴진하게 된 셈이다. 재계에서는 오너 일가가 저지른 갖가지 문제들이 멀쩡한 회사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한앤코가 홍 회장 일가를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4일 확정했다. 이에 따라 홍 회장 일가는 보유한 남양유업 주식 37만8,938주(합계 지분율 52.63%)를 한앤코에 넘겨줘야 한다.
홍 회장은 아직 여러 건의 소송에 얽혀 있어 이번 소송의 결과가 남아있는 분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앤코는 본안 소송과는 별개로 2022년 홍 회장에게 경영권 이양 및 정상화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50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추가 제기했다. 대유위니아그룹이 제기한 계약금 반환 소송도 남아있다. 대유위니아그룹은 한앤코의 계약이 해지된 후 홍 회장과 인수를 위한 협약을 맺고 계약금 320억 원을 건넸지만 이를 돌려받지 못했다.
홍 회장은 1977년 남양유업 기획실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이사, 부사장, 사장 등을 거쳤고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故) 홍두영 회장이 고령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2003년 회장에 올랐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등 여러 스테디셀러를 앞세우면서 서울우유에 이어 업계 2위 자리를 지켜왔다. 홍 회장은 새 제품 개발에 힘쓰는 한편 백미당 등 외식 브랜드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번번이 불매운동의 타깃이 되면서 경영 상태가 나빠졌다. 2013년 지역 대리점에 물품을 강매한 사실이 드러나 전국적 불매 운동이 일어났고 남양유업은 매일유업에 2위 자리를 내줬다. 2019년에는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의 마약 투약 사건이 터졌다. 2021년에는 홍 회장이 경쟁사 매일유업에 대한 허위 비방글을 쓰도록 지시한 혐의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경영권 매각 상황을 불러온 2021년 불가리스 사태의 배경에도 홍 회장의 오판이 자리한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보건 당국의 반박으로 뭇매를 맞았다.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임하겠다 밝히고 한앤코와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백미당 등 외식사업부는 팔지 않겠다고 하고 오너 일가의 처우를 보장해주기로 한 점 등 한앤코가 여러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일방적으로 없던 일로 한다고 통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너의 독단적 의사 결정구조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탈이 난 것 같다"며 "전문경영인 체제와 달리 내 회사라는 애착이 강해 홍 회장이 모든 걸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 한앤코는 앞으로 전문 경영인을 발탁해 남양유업의 경영 정상화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남양유업은 그동안 비상경영체제로 김승언 대표가 이끌어 왔다. 한앤코 측은 "주식매매 계약을 통해 경영권을 가져오면 남양유업 임직원들과 경영 개선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남양유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