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결승이 주는 압박

입력
2023.12.27 04:30
24면
흑 변상일 9단 백 신진서 9단
결승 3번기 제1국
<2>



결승전이라는 무대가 선수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무겁다. 그리고 압박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은 바둑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 피지컬이 좌우하는 종목에서는 경기가 어느 정도 흐르면 자연스레 몸이 풀리기 마련이나, 바둑에선 도리어 시간이 갈수록 치명타가 된다. 평소 2, 3집 우세도 쉽게 승리로 연결하던 선수가 잘 둬서 10집 이상 우세하게 만든 대국을 뒤집히는 건 부지기수. 게다가 주요 대국에서 이렇게 무너진 선수 중 다시 성적을 회복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승리가 눈에 밟힐 때 위기가 찾아온다는 명언이 가장 적나라한 곳이 바로 바둑이다. 이세돌 9단이 세계대회 결승에서 끝내기 수순을 밟으며 인터뷰 멘트를 생각하다가 대역전패 당할 뻔한 적 있다는 것 역시 바둑계의 유명 에피소드 중 하나다.

흑1은 백돌 세 점의 근거를 박탈하는 급소. 신진서 9단은 백2, 4로 돌을 탄력적인 형태로 만드는데 집중한다. 여기서 변상일 9단의 선택은 흑5. 세력을 쌓아 하변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방향 착오였다. 3도 흑1에 한 칸 띄우며 우변을 키우는 것이 정수. 백6의 끊음에 흑7, 9를 밀어둔 후 흑11에 두는 것이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실전 백6이 좋은 반발. 흑7의 끊음에 백10, 12로 웅크리는 작전이 주효했다. 흑13은 백14, 16을 허용하는 대신 하변을 선점하겠다는 변상일 9단의 생각. 하지만 인공지능의 관점은 달랐다. 우변을 너무 크게 손해 봤다는 것. 4도 흑1에 연결한 후 흑3에 벌려 백이 흑5 자리에 움직이는 전투는 버텨냈어야 했다는 의견이다. 실전 흑17에 신진서 9단이 백18로 버티자 백이 우세해졌다.

정두호 프로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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