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문턱 확 높인 프랑스… 반난민 정서에 갈라지는 프랑스 사회

입력
2023.12.20 18:30
극우진영 주장 반영... 정부안보다도 규제 강화
국적 취득은 어렵게, 외국인 복지 혜택은 축소
좌파 "정부에 수치스러운 순간"... 사임 각료도
EU, 새 이민법 합의... 신속한 '심사·추방' 규정

프랑스 의회에서 이민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한 '이민법 개정안'이 가결됐다. 유럽 각국에 확산되고 있는 반(反)이민자 정서, 난민 유입 억제 움직임에 편승한 것으로, 이민 허용 기준을 높이는 동시에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이는 내용이 법안의 골자다.

다만 의회 논의 과정에서 애초 정부안(案)보다도 더 엄격해져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강력한 이민 억제책을 요구한 극우 정당 주장이 대폭 반영된 탓인데, 좌파 진영은 물론 정부 각료마저 반발하고 있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프랑스의 사회적 갈등도 오히려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규모 할당, 거주 기간 조건 등 추가"

19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상원과 하원은 이날 밤 차례로 이민법 개정안을 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상원은 찬성 214표 대 반대 114표, 하원은 찬성 349표 대 반대 168표의 결과가 각각 나왔다.

주목할 대목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 비해 이민 문턱이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정부안에는 담기지 않았던 △이민자 규모 할당제(의회가 매년 망명을 제외한 이민자 수 결정) △일정 기간 거주 시 체류 자격 부여 등이 새로 추가된 것이다. 또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주거 지원도 까다로워졌다. 노동자는 3개월간, 실업자는 무려 5년간 거주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쓰레기 수거원이나 배달원 등 프랑스인들이 기피하는 인력 부족 업종에 종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1년간 특별 체류 허가' 규정도 강화됐다. 프랑스에 3년 이상 거주하고, 최근 2년 중 1년 이상 고용 상태에 있었던 외국인이 대상인데 '범죄 전과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프랑스에서 출생한 외국인 자녀의 국적 취득 기준도 엄격해졌다. 지금까진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도 성년이 되면 프랑스 국적을 자동으로 얻었는데, 앞으로는 16~18세 때 국적 취득을 별도 신청해야 한다. '심사'를 받도록 한 셈이다. 게다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국적 취득이 금지된다. 경찰관 등을 살해한 이중 국적자에 대해선 프랑스 국적 박탈도 허용하기로 했다.


보건부 장관, 이민법 반대하며 의회 표결 전 사퇴

그러나 이번 법안 처리로 프랑스 내 이민 갈등이 일단락되기는커녕, 오히려 격화할 공산이 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파 진영, 특히 극우 정당과 타협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야권 우위인 하원은 11일 정부안에 반대하며 심의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도 성향인 여권으로선 우파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고, 실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더 강력한 이민 법안으로 거둔 이념적 승리"라며 환영을 표했다. AFP는 "이번 법안 협상을 마크롱 정부의 우경화 신호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좌파 진영은 물론, 정부·여당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오렐리앵 루소 보건부 장관은 의회 표결 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다른 장관 4명도 사의 표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 발로 사회당 하원 원내대표는 "정부에 수치스러운 순간"이라고 직격했고, 프랑스인권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0년간 외국인 권리에 대한 가장 퇴행적인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이민법 개정은 최근 유럽연합(EU) 회원국들 상당수에서 '반이민 정책'이 도입되는 상황에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EU는 20일 난민, 망명 신청자 등을 다루는 새로운 EU 법률에 합의했다. 개정 법안에는 법규 위반 소지가 있는 입국자에 대한 신속한 자격 심사, 국경 지역 구금 시설 설립, 망명 신청 거부자에 대한 신속한 추방 등이 담겨 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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