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기사들의 대국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코멘트는 단언컨대 “운이 좋았습니다” 일 것이다. 바둑 팬이라면 지극히 공감할 내용일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둑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만큼 우연의 요소가 적은 스포츠나 게임은 없기 때문이다. 날씨의 요소도 없는 데다가 혼자 진행하기 때문에 팀 운 같은 요소조차 전무하다. 일단 대국이 시작되면 동일한 출발선에서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361칸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어떤 아이템이나 ‘찬스 사용’도 불가하며 심판 재량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바둑을 둬본 사람이라면, 과정의 냉혹함과 승리의 성취감이 상상 이상으로 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 순간 이런 환경에 놓인 바둑 기사들이 운을 찾는 것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신을 찾고 언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다.
박정환 9단은 백1에 끊어가며 우변 흑 대마에 압박을 가한다. 흑10까지 부분전이 마무리되며 백은 하변에 두터운 세력을 쌓았다. 백11은 당연한 봉쇄. 이때 놓인 흑12의 젖힘에 박정환 9단의 손길이 멈춘다. 이윽고 두어진 백13. 얼핏 좋은 타이밍의 응수타진처럼 보였지만 흑22까지 흑이 선수를 잡아 백이 손해 본 바꿔 치기였다. 7도 백1, 3으로 평범하게 하변을 막는 것이 정수. 백7까지 백이 하변을 지켜 우세한 형세였다. 흑22 역시 신진서 9단의 까다로운 응수타진. 결국 백29의 완착을 이끌어냈다. 8도 백1, 3으로 중앙을 밀어가며 좌변 축을 방어하는 것이 정수였다. 비교적 쉬운 대응이 가능했던 장면에서 박정환 9단이 너무 많은 것을 고려했다.
정두호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