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경선 들머리 지역인 뉴햄프셔주(州)의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은 사실상 레이스를 독주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니키 헤일리 전 주(駐)유엔 미국대사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내에 이렇다 할 경선 경쟁자가 없는 대신, 본선에서 제3후보에게 지지표를 많이 빼앗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CBS방송이 8~15일(현지시간) 아이오와(855명) 및 뉴햄프셔(1,054명)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각각 진행해 1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뉴햄프셔의 경우 호감도 항목에서 헤일리 전 대사가 55%의 선택을 받아 1위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36%)은 물론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37%)까지 멀찌감치 따돌렸다. 합리성 면에서도 51%를 기록, 디샌티스 주지사(37%), 트럼프 전 대통령(36%)을 압도했다. ‘누가 가장 준비된 후보인 것 같냐’는 질문에는 54%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53%가 헤일리 전 대사를 골랐다.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이는 뉴햄프셔가 상대적으로 중도층이 두터운 경선 지역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극우 성향인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로 인식하는 유권자 비율(33%)은 아이오와(48%)보다 현저히 낮았다. 내년 1월 23일 비(非)당원도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 형태의 경선이 맨 먼저 치러지는 뉴햄프셔는 같은 달 15일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와 함께 경선 초반 기세를 좌우하는 승부처다. 여기서 치고 나가는 주자에게 망설이던 유권자가 편승할 수 있다.
다만 아직 지지율 격차는 상당하다. 경선 초보다는 줄었지만 44%(트럼프)대 29%(헤일리)로 15%포인트나 벌어져 있다. CBS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전히 앞서 있지만, 헤일리 전 대사가 ‘반(反)트럼프’ 세력의 대안으로 기반을 굳혀 가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한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후보로 꼽히다 이제 2위 싸움에서마저 고전 중인 디샌티스 주지사 앞에는 대형 악재가 불거진 상황이다. 그의 슈퍼팩(미국의 정치자금 기부단체) ‘네버 백 다운’이 내홍에 휩싸이며 모금 총책임자였던 대표 크리스 잰코스키에 이어 전략을 총괄하던 제프 로까지 이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최대 강점으로 여겨졌던 조직력과 자금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작가 메리앤 윌리엄슨과 딘 필립스 하원의원의 지지율이 한자릿수로 미미해 이변이 없으면 당내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골칫거리는 본선에서 맞닥뜨릴 제3후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제3후보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층 재결집에 장애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근거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7개 경합주 등록 유권자 4,935명을 대상으로 블룸버그와 모닝컨설트가 벌인 여론조사 결과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41%가 제3후보로 갈아탈 수 있다고 답했다. 재대결이 유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탈 가능성 답변 35%)에 비해 지지층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중도표 경합만 신경 쓰면 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양방향이다. 진보 성향인 코넬 웨스트(무소속), 질 스타인(녹색당) 후보가 왼쪽에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무소속) 후보가 중도 측에서 표를 잠식할 개연성이 있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중도 성향 정치단체 ‘노 레이블스’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화당 측 정치 전략가 사라 롱웰은 블룸버그에 “내년 대선은 박빙 승부여서 조그만 차이가 엄청난 피해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