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하기도 바쁜데..." 법적 다툼에 골머리 앓는 동물단체들

입력
2023.12.13 00:10
긴급한 구조 특성 탓 先조치하지만
주거침입, 명예훼손 등 송사 휘말려
"공권력 권한 강화 등 법 손질 필요"

"도살 중지! 문 여세요!"

올해 6월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와 KK9R은 경기 시흥시의 불법 개 도살장을 급습했다. 현장은 참혹했다. 개들의 비명과 기계 소리, 살갗 태우는 냄새가 섞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 단체는 급히 경찰과 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을 호출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불가피하게 강제로 문을 개방했고, 죽은 채 피를 흘리고 있는 개 3마리를 발견했다. 그렇게 24마리가 긴급 구조됐다.

하지만 구조에 나선 김현유 KK9R 대표는 이튿날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혐의는 특수주거침입.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문을 열었으니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뒤늦게 현장에 온 경찰관과 공무원은 김씨가 문을 연 후 내부로 진입했다. 김 대표는 도살·유통업자와 함께 재판에 넘겨져 20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법적 분쟁에 휘말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권력이 구조에 미온적인 사이 적극적으로 동물들을 살리려는 단체들의 노력이 법의 올가미에 걸려 범법 행위가 될 위기에 처했다.

동물단체들이 겪는 분쟁은 주거침입,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명예훼손 등 혐의도 다양하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10월 말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5월 경기 김포시의 개 도살장에서 구조활동을 하던 중 문이 열려 있던 농장에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주민들의 거듭된 신고와 "도살이 분명하다"는 동물행동학 박사의 판단에 따라 경찰 신고 후 구조에 나섰지만, 수사기관은 개방된 공간이라도 허락 없이 농장에 들어간 사실을 문제 삼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7건, 동물권 단체 케어 역시 김영환 대표가 10건 정도의 송사에 얽혀 있다. 카라는 육견협회가 1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해 수사를 받고 있다. 또 무허가 농장 폐쇄활동의 일환으로 정부에 신고된 개농장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는데, 농장 주인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졌다. 김영환 대표는 지자체의 동물보호시설 폐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가축분뇨법 위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달걀 포장과 관련한 허위광고 문제를 지적하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활동가도 있다.

지난한 수사와 처벌 가능성 등 법적 문제가 중첩되면 동물 구조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활동가는 심리적 타격을 크게 받아 구조활동을 포기하고 동물권 연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경찰은 문을 열려면 영장이 있어야 한다 하고, 공무원은 경찰이 개방해야 구조할 수 있다 하니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신속한 조치가 관건인 동물구조 특성을 감안하면, 여전히 동물학대 처벌에 소극적인 법 규정을 좀 더 손질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동물권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피해 발생 전 예방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현행법은 죽음이나 상해 등 피해가 발생한 경우, 즉 '사후 결과'를 중시해 동물보호법을 적용하는 탓이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민간단체가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공권력이 동물을 긴급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경찰, 지자체 등 당국의 조사 권한과 의무를 더 강하게 부여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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