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사업자에게 ‘공공주택 시행사’ 역할을 허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주택 공급 독점 구조를 깨뜨리려는 조치다. 일각에서는 공공주택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누가 짓든 공공주택 품질이 갑자기 높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이런 내용이 담긴 ‘LH 혁신 방안’을 공개했다.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를 계기로 잇달아 불거진 ‘철근 누락’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다. 국토부는 △LH의 독점적 지위 △전관 이권 개입 △미흡한 감리 체계가 얽히고설켜 부실공사가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공공주택 공급 유형에 ‘민간 시행’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LH는 토지만 제공하고 민간 사업자가 설계·시공·감리 등 사업 추진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공공주택 브랜드도 국민이 선호하는 것을 사용한다. 현재는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공공주택 사업자는 LH 등 공공부문으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LH가 늘어나는 공공주택 물량을 관리하기가 벅차고, 품질을 개선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국토부는 LH의 혁신이 부진할 경우, 공공주택 공급 구조가 민간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분양가와 하자 빈도, 입주자 만족도 등을 공급주체별로 평가해 LH와 민간 가운데 성과가 우수한 사업자가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하는 구조가 도입된다. 국토부는 향후 관련 법이 개정되는 대로 민간이 주도하는 공공주택 사업을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민간 시행 공공주택도 분양가와 공급 기준을 기존 공공주택과 동일하게 정해 공공성을 확보한다.
LH 기능은 외부 기관으로 이관해 각종 사업에 전관 개입을 차단한다. 우선 LH가 시행하는 공공주택의 설계·시공업체 선정권은 조달청으로, 감리업체 선정과 감독 기능은 장기적으로 국토안전관리원에 위탁한다. LH 퇴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자는 2급 이상(부장급)에서 3급 이상(차장급)으로 확대한다. 대상 업체는 자본금과 매출액 기준을 삭제하거나 완화해 200여 개에서 4,400여 개로 늘린다.
국토부는 이날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도 내놨다. 감리가 건축주와 건설사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감독하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감리 선정권을 건축주 대신 허가권자(지방자치단체)에게 주는 건축물 대상을 주택에서 다중이용 건축물로 확대하는 조치 등이 담겼다.
다만 민간 시행을 도입한다고 고품질 공공주택이 건설될지는 미지수다. 민간 시행을 활성화하려고 민간 사업자에게 유인책(인센티브)을 제공하다가 공공성을 떨어트릴 우려가 있다. 반대로 인센티브가 부실하면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저조할 수 있다. 국토부는 민간 사업자에게 공공주택 매입을 약정하거나 주택도시기금을 저리에 빌려주는 대신 분양가는 인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공공아파트 시공에 참여하는 중견 건설사들은 민간 시행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면서도 “민간에 공공과 동일한 비용으로 고품질의 주택을 만들거나 동일한 품질의 주택을 더 저렴하게 만들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맞추는 묘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