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사관 "'캠퍼스 낭만' 아쉽지만, 일찍 더 넓은 세상 배우고 싶어"

입력
2023.12.16 10:00
17면
검찰9급 17세 합격 고양동산고 선이정
"기존 관념 때문에 사람들 힘들게 살아"
"경험 쉽지 않은 '음지' 먼저 경험 중"
"선취업 후진학으로 더 알찬 삶 살 것"

수능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든 고등학생들이 각 대학을 들락거리며 입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고양동산고 3학년 선이정군은 아침마다 가는 곳이 따로 있다.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이다. 만 17세이던 지난 7월 국가직 9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최연소 합격한 뒤 9월 11일부터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그의 일터다. 2개월 남짓하던 발령 대기 기간에 생일이 지나면서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지만, 회식 자리에선 여전히 소주 맥주 대신 사이다 콜라만 들이켜야 하는 ‘고등학생 수사관’이다. 지난 9일 그의 일터에서 만난 선군은 “대학이 제공하는 다양한 교양 강의와 ‘캠퍼스 낭만’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다”면서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선군이 지청에서 하는 업무는 벌금 체납자들에게 납부를 독촉하는 일이다. 집행과 내 재산형 집행팀 수습으로 선배 수사관을 도우면서 일을 배우는 중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음직한 법 위반자들에게 꼬투리를 안 잡히려면 관련 규정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고, 전문적이고도 어른스러운 어투와 화법을 구사해야 하는 등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그는 “체납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가 오면 납부 방법을 안내하거나 다른 질문에 답하는 게 내 일”이라며 “수능 시험을 본 친구들은 당분간 경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의 ‘음지’를 먼저 공부하는 중”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본격 시작한 것은 고2 때. 전해 가을 우연히 '공무원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공무원 취업을 목표로 설정했지만, 반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반년이 걸렸다. 부모님은 아들의 너무 이른 사회생활에 반대했고, 학교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아이가 왜’라며 공부를 강요했다. 그러나 선군은 “고등학생이 되면 사교육을 따로 받아야 하고, 대학 진학도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이 이해하기 힘들었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바탕으로 ‘젊을 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주장해 결국 모두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선취업 후진학’이 가능한 시대지만 그걸 애써 부인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아버지 선민(49)씨는 “학교 성적이 치대에 진학한 형 못지않았던 터라 기대도 했다”며 “사촌 팔촌까지 동원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학교 공부 때문에 하교 후 인터넷 강의로 시험 준비를 하던 때 선군은 낮은 처우 등으로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급락, 그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시험 준비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2년 반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경쟁률이 떨어지면 그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또 제 기준으로는 9급 월급도 적지 않았고, 군대 있을 때도 호봉이 오르는 점이 매력적이었요. 이렇게 몇 년 보내다 보면 8급, 7급이 되고 가정을 꾸릴 때쯤이면 나쁘지 않은 처우를 받게 됩니다." 보통의 친구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공무원연금 최소 납입 기간(10년)을 채우게 된다는 것도 이점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검찰직은 올해 274명 선발에 5,660명이 지원해 20.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전체 평균 경쟁률(22.8대 1)을 약간 하회한 직렬이다. 많고 많은 직렬 중에 그는 왜 검찰직을 택했을까. “공무원만 하면 지겨울 수 있잖아요? 검찰직으로 어느 정도 일을 하면 법무사, 집행관 등 다른 직업으로 이직이 유리해 보였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검찰에 있는 동안 전국의 지검, 지청에서 근무하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곳곳의 지역사회도 공부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차차 찾을 겁니다." 앳된 얼굴에서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정민승 기자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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