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쌓듯 이미지 조합·변주…"미술의 본질은 시도하는 즐거움"

입력
2023.12.10 19:00
신라이프치히 화파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추상 이미지 조합한 구상·설치·판화…벽지까지

신라이프치히 화파 대표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51)가 2020년에 그린 ‘무제2’를 보자. 빨강, 초록, 파랑 등 빛의 3원색을 썼다. 삼각형, 원, 타원, 반원 등이 모여 사람 형상이 됐다. 서커스의 한 장면 같기도, 어릿광대 같기도 하다. 밝지만 우울하다. 색 번짐과 얼룩은 무게감을, 곡선은 율동감을 부여한다. 사람, 하늘, 구름이 여백 없이 꽉 채우고 있는 구도에선 사실감이 느껴진다.

루크헤베를레의 그림 160여 점을 모은 국내 첫 개인전이 지난달 29일부터 성동구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열리고 있다.

루크헤베를레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어렵지 않다. 기호처럼 느껴지는 기하학 도형을 병치하고 반복한 덕이다. 이미지를 갖가지 방식으로 조합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레고 블록 쌓기와 비슷한 방식의 창작이다. 2023년 작 ‘무제’에 나오는 턱을 팔에 괴고 누운 여성 이미지에 등장하는 꺾인 팔과 다리, 줄무늬 치마 이미지 등은 그의 다른 그림에 다른 용도로도 등장한다. 작가만의 시각 언어를 창출한 셈이다.

루크헤베를레는 이를 무한 변주한다. 같은 이미지에 다른 색을 다른 방식으로 칠한다. 어떤 것은 매끈하게 어떤 것은 거친 질감을 느껴지게 한다. 분무기로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오일, 에나멜, 구아슈(Gouache·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 등 사용한 물감도 제각각이다. 갖가지 방식의 조합으로 구상화, 추상화, 설치작, 판화까지 시도했다. 그림 속 이미지가 캔버스 밖으로 확장돼 벽지가 되기도 한다.

놀이하듯 예술하는 셈이다. 루크헤베를레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작업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십 개 캔버스를 놓고 하나의 이미지를 이곳저곳 배치하며 조합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UNC갤러리의 이정은 수석 큐레이터는 “미술의 본질은 창작을 위한 실험과 탐구, 시도에서 오는 즐거움이지 장황하고 어려운 무언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고 했다. 전시에 나온 160점 중 157점에 '무제'라는 이름이 달렸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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