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위안부 소송 상고 안 해...한국 정부가 조치해야"

입력
2023.12.08 18:32
가미카와 요코 외무장관, 기자회견서 밝혀
"주권면제 원칙상 한국 재판권에 복종 안 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던 일본 정부가 상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의 나라 법정의 피고가 될 수 없다'는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강조하면서 아예 재판을 거부하겠다는 전략을 확인한 것이다.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장관은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법원 상고 여부 질문을 받고 "국제법의 주권면제 원칙상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상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상고하지 않을 경우 판결이 확정돼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책임이 돌아오는 데 대해서는 "한국 측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법과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지난달 한일외교장관회의 등을 통해 한국 측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고법 민사33부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지난달 23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달리 판단한 것이다. 국가면제란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따르는 것을 면제받는다'는 관습국제법상 규칙이다.

일본 정부는 앞서 진행된 다른 위안부 손해배상소송에서도 국가면제 원칙을 내세워 재판 결과를 무시하는 전략을 펴 왔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2021년 1월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을 때도 일본 정부는 항소하지 않았다.

2018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 판결은 일본 기업이 피고여서 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의 재산 등에 대한 압류 조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위안부 소송은 피고인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인 대사관 등 외교 공관이 국제법에 의해 보호돼 압류할 수는 없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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