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임신중지(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州)에서 법원이 자신의 임신 중단을 허락해 달라는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폐기 판결한 후 처음으로 임신부가 법원에 긴급 구제를 요청해 얻어낸 승리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CNN방송에 따르면 텍사스주 트래비스카운티 지방법원 마야 게라 갬블 판사는 이날 긴급 심리에서 태아에게 치명적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임신 20주 차 케이트 콕스(31)가 합법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엄격한 텍사스주의 임신중지금지법이 예외로 규정하는 '의학적 응급 상황'으로 인정한 것이다.
앞서 콕스는 지난 5일 임신중절술을 받을 수 있도록 긴급 명령을 내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콕스의 태중 아기가 18번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에드워드증후군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산되거나 생후 10주 내 대부분 사망에 이르게 된다. 콕스는 "내 아기와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주법이 우리 둘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며 "건강과 미래의 임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려면 지금 임신을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증후군은 모체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콕스는 임신 후 심한 경련, 통증 등으로 응급실을 4회나 찾았지만, 임신중절은 거부당했다. 제왕절개로 두 자녀를 출산한 데다 기저질환이 있는 그가 이번 임신을 계속 유지할 경우 임신성 고혈압과 당뇨 등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고, 후속 임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게 변호인 측 주장이라고 텍사스트리뷴은 전했다.
콕스의 주치의인 산부인과 전문의 담라 카르산은 "콕스가 임신중지금지법의 예외에 속한다는 선의의 믿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법원의 명령 없이는 임신중절술을 제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임신중절을 일절 금지하는 텍사스주법은 의학적 응급 상황을 예외로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 어떤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할 것인지 모호한 탓에 의사들조차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텍사스에서 임신 중단 시술을 행한 의료진은 면허 취소와 최대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의 벌금, 최대 99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번 결정은 텍사스주의 임신중지금지법상 의학적 예외 조항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텍사스 주법에 따라 임신 중단을 거부당한 여성 5명이 "법의 임신 중단 허용 사유를 보다 명확히 해 달라"며 주정부를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낸 상태다.
이번 소송에서도 "콕스의 상태가 주법상 예외 기준을 충족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텍사스주 측과 "예외임을 입증하려면 환자가 사망이라도 해야 하느냐"는 콕스 측이 맞붙었다. 미국 생식권센터(CRR) 소속으로 콕스를 변호하는 몰리 듀안은 "법이 좁게 예외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주정부조차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판결 직후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콕스의 주치의와 해당 병원에 '판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술을 행할 경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주정부가 고등법원에 항소하면 콕스의 임신 중단이 지연되거나 거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텍사스트리뷴은 "법원의 금지 명령이 나중에 뒤집힐 경우 임신을 중단한 콕스와 그의 남편, 의사가 소송을 당할 수 있을지 여부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