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 명의 서울시공무원 중 근무평가 최하위 등급인 ‘가 평정’을 받아 성과급을 못 받는 직원들이 처음 나왔다. 이들은 별도 교육 후 개선되면 다시 보직을 받아 업무에 복귀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퇴출(직권면직)될 수도 있다. ‘월급루팡(맡은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만 축내는 직원)’이나 ‘오피스 빌런(직장에서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직원)'을 걸러내 조직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서울시는 조직 분위기를 저해하는 직원으로부터 다수의 성실한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4월 도입한 최하위 근무성적 평정제도인 ‘가 평정’ 대상자를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해당자는 성과급(연봉의 일부) 미지급, 호봉 승급 6개월 제한, 전보 조처 등이 이뤄진다. 인원 수와 소속 기관은 비공개지만 1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본래 시의 근무성적 평가는 수(20%), 우(40%), 양(30%), 가(10%) 4개 등급이다. 다만 가 등급 해당자가 없으면 양의 비율을 40%로 늘릴 수 있다. 그동안은 가 등급 직원이 없어 수ㆍ우ㆍ양만으로 운영돼왔다. 이런 온정주의가 조직문화를 해친다는 지적에 시는 4월 유명무실했던 ‘가 평정’을 실질 도입하는 인사혁신안을 내놓았다. 이후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다양한 직급과 연령의 직원 40여 명으로 구성된 ‘가 평정 기준결정위원회’에서 마련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가려냈다. 평가 대상은 서울시 소속 공무원 5~9급(자치구 제외) 9,394명(신규 임용 및 복직 등 근무기간 2개월 미만 제외)이었다.
오 시장이 과거 재임 시절 성과주의를 내세우며 실시했던 ‘3% 퇴출제’ 부활과 다름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 시장은 2007년 실ㆍ국ㆍ본부별로 업무 능력이 떨어지거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하위 3% 명단을 의무 제출하도록 하고, 이 가운데 100여 명을 추려 ‘현장시정추진단’이라는 이름으로 재교육을 실시했다가 망신 주기라는 큰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시는 이번 제도는 지난해부터 운영한 직원 간담회에서 문제가 제기돼 마련된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망신 주기’나 ‘낙인효과’와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본인의 업무를 동료에게 상습적으로 떠넘기며 일을 게을리하거나, 합당한 업무 협조 요청에 욕설ㆍ협박 등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일부 직원 탓에 구성원 다수의 근무 의욕이 저하된다는 의견이 나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방지하고자 도입됐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대평가로 각 실국별 하위 3%를 의무 선발했지만, 이번에는 명확한 평가 기준과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당한 평정이 없도록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소속 부서장은 ‘가 평정’이 유력한 직원들을 면담하고, 사전 예고해 근무 태도 개선을 요청한 뒤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또 다른 ‘가 평정’ 기준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만 최하 평정을 매겼다. 당사자의 이의 제기 시 별도 독립 기구인 감사위원회 검증절차를 거쳤고, 시 단위의 ‘가 평정 위원회’에 출석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도 이와 관련 별도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별도 문의나 민원을 제기한 노조원은 아직 없다”고 했다.
‘가 평정’ 해당자들은 이날부터 2주 동안 직무역량 및 업무태도 등 개인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역량강화 교육을 받는다. 필요할 경우 심리적 충격을 고려한 정신과 전문의 상담도 이뤄진다. 2주 교육에도 불성실하게 참여하거나 미흡한 평가를 받으면 직위해제 후 3개월간 심화교육이 진행된다. 시 관계자는 “심화교육 이후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지방공무원법 65조에 따라 임용권자가 직권 면직할 수 있다”고 했다. 시는 교육을 마친 직원을 직무역량에 맞는 부서와 보직에 배치해 새 출발을 돕고, 이후에도 일대일 코칭과 개인역량 개발 교육을 지원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