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진·재진 개념 사라진 비대면 진료…의료계 "안전보다 편의 우선"

입력
2023.12.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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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비대면 진료 보완 방안 발표
6개월 내 대면 진료 경험 시 비대면 가능
의료계 "초진 허용 우려" 복지부 "현장 애로 반영"

질환과 무관하게 6개월 이내 대면 진료를 받은 의료기관에서의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 소아 환자에 한해 상담만 가능한 야간과 휴일 비대면 진료는 누구나 진료부터 처방까지 가능해진다. 의료계에서는 진료 편의를 안전보다 우선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올해 6월 1일부터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 적용하는 개선안으로 오는 15일부터 시행한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시작 당시 안전성 논란으로 초진을 제한했으나 개선안에는 초진·재진 개념 자체가 빠졌다. 현재는 동일한 의료기관에서 정해진 기간 내 같은 질환에 대한 재진만 허용되는데, 앞으로는 질환 구분도 없다. 가령 감기로 특정 의료기관에서 6개월 내 진료를 했다면 감기가 아닌 복통 증상이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수가를 청구할 때 적용되는 재진 기준과 비대면 진료의 재진 기준이 달라 생기는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초진·재진 개념을 없앴다. 국민건강보험법상 동일 의료기관, 동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질환(질병코드)이 달라도 동일 부위거나 의사 판단에 따라 재진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현재 비대면 진료에서는 동일 질환만 재진으로 규정됐다.

박 차관은 "의료 현장에서 보험 청구상의 재진 기준과 헷갈리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6개월 이내 진단한 환자에 대해서는 의사가 환자 정보를 갖고 있어 진단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섬과 벽지, 이동이 어려운 환자만 가능한 약 배송 기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아 조율이 필요하고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법안조차 없다"고 답했다.

의료계는 복지부가 사실상 초진을 허용하고 환자 안전을 위험으로 내몰았다고 우려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진료에는 초진과 재진이라는 의학적 개념만 있지 비대면 진료 경험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업계 용어"라며 "비대면 진료 안전성을 위해 초진 허용은 안 되는데 환자 안전보다 (플랫폼 업계의) 영리 행위가 우선시된 셈"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도 성명을 통해 "정부가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의약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앞선 약속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결정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플랫폼 업계는 진료 대상 확대를 반기면서도 약 배송이 불가해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장은 "야간이나 휴일에 비대면 진료 수요가 늘겠지만 진료 이후 약을 타야 하는데 근처 약국이 야간이나 휴일에 문을 연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야간과 휴일에 전 국민의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허용돼 18세 미만 소아 초진 확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아이들은 직접 보거나 만져 봐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전화나 영상통화로 알 수 있겠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면 진료 요구 권한을 명시해 비대면 진료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박 차관은 "환자에게 대면 진료를 요구해 정확하게 진단한 뒤 필요한 처방이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놨다"며 "비대면 진료가 부적합한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의료법상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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