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공공기관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된 ‘네트워크 장비 불량’에 대해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제조사인 미국 시스코(CISCO)조차 원인을 알기 힘든 아주 특수한 장애”라고 밝혔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29일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복구 관련 브리핑에서 “장애 발생 후 우리 측과 시스코 한국 관계자도 원인을 확인하지 못해 미국 본사에 문의했는데, ‘접촉 불량 성격일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고, 로그(작동 기록)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아주 예외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도 “제조사도 불량 발생 원인에 대해 아직 답을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17일 공무원 인증용 전산망인 ‘시도ㆍ새올 행정시스템’과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가 종일 먹통이 되면서 시민들이 각종 서류 발급부터 전입 신고, 부동산 거래, 화장장 예약까지 일상 곳곳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행안부는 8일이나 지난 25일이 돼서야 전산망 장애 원인으로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 포트’ 불량을 지목했다. 라우터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로, 라우터에 통신선을 꽂는 포트(연결단자)가 손상된 탓에 대용량 패킷(데이터 전송 단위)이 제대로 전송되지 않아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라우터는 2015년 도입됐고 2019년 단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원장은 “내구연한이 9년이라 노후화 문제는 아니다”라며 “내구연한이 지나더라도 바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계속 점검하면서 이상이 있는 장비부터 바꾼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점검을 태만히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민이 불편을 느끼지 못하도록 특수한 경우에도 장애를 미리 인지하고 미연에 방지할 방법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전산망 시스템 노후화로 5년간 발생한 장애는 1만7,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서 실장은 “게시판과 콜센터로 들어온 시스템 사용법 질문과 개선 요구사항 등을 모두 합친 숫자”라고 해명했다. 다만 “시스템 노후화로 신기술 적용이 불가능한 상황은 맞다”면서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소프트웨어사업을 대기업에도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에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 왔다. 서 실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어디가 낫다고 얘기하기 어렵다”면서도 “일반적으로는 대기업이 기술력을 많이 축적했고 문제 해결 경험이 많으니 대기업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에도 공무원들이 내부 회계처리에 사용하는 지방재정관리시스템 ‘e호조’가 한때 접속 불능 상태에 빠졌다가 15분 만에 복구됐다. 앞서 22일에는 일부 동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 발급 업무가 20분 지연됐고, 23일에는 조달청 나라장터시스템이, 24일에는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등 최근 들어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가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