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창피한 줄 알라."
29일은 대법원이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죄나 배상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고, 강제이행을 위한 추가 소송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년 전 대법원은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아직도 판결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의 분발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미쓰비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했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줄곧 "강제동원 피해자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위자료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해당 기업이 국내 보유 중인 특허권과 상표권을 압류해 매각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잇따라 승소했으나 미쓰비시 측의 재항고로 사건은 지난해 5월 대법원에 접수됐다.
이국언 시민모임 이사장은 "작년에는 양 할머니가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이제 이곳에 발을 내딛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5년이 지나도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임지영 정의기억연대 국내연대팀장도 "(대법원은) 시간을 끌며 오래도록 멈춰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미쓰비시 자산 매각과 관련한 재항고 사건을 두고 대법원이 결정을 미루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심리 없이 바로 상고 기각) 판단을 하면, 법원 경매를 통해 특허권·상표권이 현금화돼 피해자들에게 돌아가게 되지만, 대법원은 1년 6개월 넘게 시간을 끌고 있다. 심지어 현 정부는 지난해 7월 '제3자 변제방식'을 내놨다.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자는 것으로 양 할머니 등 일부 피해자는 수령을 거부했다.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결을 이끈 이상갑 변호사는 "대법원이 인권보호 기관이 아니라 피해자 인권을 방해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피해 관련 활동을 한 최봉태 변호사도 "대법관들은 정치를 하고 있느냐"며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법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