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이 26일 돌연 경질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후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 전 원장의 교체 원인으로 지적된 흐트러진 조직 기강을 다잡고, 윤석열 정부가 중시하는 대북 정보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윤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출신인 김 전 원장과 마찬가지로 당초 외부 인사의 기용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국정원이 맞닥뜨린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 인사 발탁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이사장은 국정원 안팎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인정하는 최고의 대북 전문가로 통한다. 1986년 국정원(당시 안기부) 공채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그는 기피부서였던 북한 파트를 지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까지 북핵, 대북협상, 대북심리전 등을 주로 담당했다. 북핵 6자회담 대표로 8차례 방북했고,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작성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유 이사장 스스로도 이 같은 경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대학 4년 동안 남북통일 관련 책을 모조리 읽었다”고 밝힐 정도로 대북 이슈를 파고들었다. 국정원 재직 중에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통일 관련 공부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지도교수는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이었다.
유 이사장은 2012년 국정원을 나온 뒤에야 윤 대통령과 연을 맺는다. 2017년 검찰의 ‘국정원 정치공작’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윤 대통령이다. 유 이사장은 이로 인해 실형을 받고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이 과정에서 유 이사장은 '억울하지만 수사는 정당했다'며 언론에 심경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 대목에 끌렸다고 한다. 유 이사장은 올해 2월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에 임명됐는데, 이 시점을 전후해 윤 대통령이 유 이사장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는 전언이 흘러나왔다.
유 이사장이 그간 밝혀온 대북관과 국정원 개혁의 밑그림이 윤 대통령의 평소 지론과 유사하다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이 "국정원은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초일류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못지 않게 유 이사장 역시 국정원 개혁의 지향점으로 모사드를 꼽아왔다. 다만 유 이사장은 2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실로부터 인사와 관련)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국정원장 후보로는 김승연 원장 특보가 함께 거론된다. 국정원 출신의 또 다른 북한 문제 전문가다.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경호처장과 육사 동기(38기)다. 대북공작국장 등 북한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지만 정보보다는 공작 쪽에 특화된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과거 대북 공작금을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 비위 정보 수집에 유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 부분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