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 사이에 초록색 풀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겐 정돈되지 않은 도심 풍경으로 보이겠지만 건축가의 눈에는 회색 건물에 생기를 입히는 더할 나위 없는 아이디어로 다가왔다. 잡초가 자생하듯 삭막한 건물 표면에 생태계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것. '식물 건축가'로 알려진 남정민 고려대 교수는 잡초가 보도블록 사이 틈을 비집고 나오는 모습을 본떠 건물 벽돌에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식물을 심었다. 말 그대로 생명을 담은 '리빙 브릭(Living Brick)'이다.
서울도시건축관은 '건축가의 관점들' 연작전시의 마지막 주제로 건축가 3인의 '건축과 환경적 실험'전을 시작했다. 앞선 전시에서 예술, 가구와 건축의 관계를 조망했다면 이번에는 친환경이란 화두 속에서 찾은 건축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풀어낸다. 전시에는 김나리, 남정민, 한은주 건축가가 참여했다. 꾸준히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건축적 방법을 고민해 온 젊은 건축가들이다.
남정민은 작은 단위의 건축, 특히 일상에서 발견되는 틈새 공간에 주목했다. 전시에는 벽돌과 호환되는 리빙 브릭, 보도블록처럼 땅에 심을 수 있는 리빙홀 등이 소개됐다. 외장재에 식물을 심어 건물이나 바닥에 붙이는 것인데, 한마디로 식물을 담은 건축이다. 외관에 하나의 자연을 탑재한 건축물은 그 자체로 생태계의 일부로 작동한다.
한은주는 데이터 시각화를 활용해 일상적 공간의 역동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건축의 물성은 자연의 물리적 지형과 맥락 위에 존재하는데, 동시대 건축을 이해하는 데에는 사람이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실시간 데이터 기반의 지형학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작업이 광화문 주변 반경 2㎞ 이내 지역을 시각화한 설치 작품 '운율의 지형학'.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수치 정보를 수집해 사람들이 도시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는지 패턴화했다. 날씨 변화나 교통의 움직임 등 실시간 데이터를 건축에 적용할 수 있다면 보다 역동적인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나리는 건축물의 정면을 뜻하는 파사드(Facade)를 '건물의 옷'에 비유해 접근했다. 계절에 따라 가변성을 갖는 외피를 보여주는 '여름옷과 겨울옷', 개성적으로 디자인하는 맞춤형 창 '기성복과 맞춤복', 하나씩 덜어내며 간결해진 디자인 '유블로', 빠르게 변화하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중요한 소비자의 '불편할 결심'이라는 네 가지 관점이 제시된다. 각 관점에 등장하는 사례를 통해 다양한 기후 조건과 사회문화적 환경에 필요한 건물의 옷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 기획자인 김재경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환경적 변화의 위기 상황에서 건축을 새롭게 규정한 전시"라며 "최소한 환경과 공존하고 지킬 수 있는 건축적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입장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