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판매했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관련 파생상품의 무더기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자 금융당국이 실태 조사에 나섰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과 H지수 변동성 등을 가입자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 등이 주요 점검 대상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20일부터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대량으로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기간은 다음 달 1일까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 현황과 대응 현황을 조사하기 위한 차원"이며 "필요하다면 H지수 ELS를 판매한 타 시중은행도 서면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H지수는 홍콩에 상장된 중국 우량 기업으로 구성됐다. 2021년 초에는 1만~1만2,000포인트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6,000포인트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향후 중국 경기 전망이 밝지 않아 반등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통상 ELS는 판매 시작 3년 후에 만기가 돌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초부터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H지수 연계 ELS 상품 판매 잔액은 15조6,676억 원으로, 이 중에서 KB국민은행의 판매량이 8조1,972억 원으로 가장 많다. 은행권에서 판매된 H지수 연계 ELS 상품의 과반이 KB국민은행에서 팔렸다는 것이다. 또 4개 증권사(미래에셋·NH·KB·삼성)가 발행한 H지수 관련 ELS 가운데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만 2조3,880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KB국민은행이 판매한 H지수 연계 ELS 대다수가 이미 녹인(Knock-In) 구간에 진입했다는 데 있다. 녹인 구간은 ELS 투자 시 원금 손실이 일어날 수 있는 하한선이다. 윤 의원실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판매한 H지수 관련 ELS 중 녹인 구간에 진입한 규모는 4조6,434억 원에 달한다. 다만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는 것만으로는 손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H지수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대규모 원금 손실은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전체 투자의 30~40%가량의 손실을 예상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조사의 핵심은 불완전판매 여부다. ELS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파생상품인데도 시중은행에서만 수조 원 규모가 판매됐기 때문이다. 당국은 H지수 연계 ELS 가입자의 상당수가 고령자라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2021년 3월 이후부터는 ELS의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이 신규 가입 과정을 모두 녹음한다"며 "녹취본을 살펴보면 시중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판매 당시 정기예금 금리가 0.5~1.0% 수준이었던 반면, ELS 수익률은 3.0~4.3%에 달한 데다, 대다수 고객이 과거 가입과 수익 경험을 바탕으로 선호했던 상황"이라며 "당시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H지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