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에 전쟁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환경에 살면서 무력감도 들고 죄책감도 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내가 지구에서 태어났지'란 생각이 떠올랐고 그 주제를 며칠 동안 품고 지내면서 노래를 만들었죠."
올해 칠순을 맞은 가수 김창완이 새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를 내놓게 된 원동력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김창완은 23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 벨로주에서 연 새 앨범 발매 기념 간담회에서 타이틀곡인 '나는 지구인이다'를 들려줬다. 곡은 하나뿐인 지구에서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예찬이다. 김창완은 "'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났다'는 몇 소절을 입에 물고 서초동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미사리를 지나 팔당대교까지 1시간 30여 분 내달리면서 악상을 떠올렸다"며 "지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곳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에 대한 감정이 벅차올라 이 곡을 녹음할 때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앨범 제작 뒷얘기를 들려줬다.
24일 공개되는 김창완의 새 앨범엔 '나는 지구인이다'를 비롯해 '이쁜 게 좋아요' 등 신곡 3곡에 그가 밴드 산울림으로 활동하며 발표한 히트곡 '둘이서'(1978), '찻잔'(1980) 등 총 13곡이 실린다. '나는 지구인이다'는 그가 1983년 낸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을 잇는 두 번째 프로젝트 앨범이다.
이 앨범엔 김창완의 삶의 연대기가 빼곡히 담겼다. 앨범에 실린 '청춘'(1981)이 김창완이 스물일곱에 쓴 청춘의 기록이라면 '시간'(2016)과 '노인의 벤치'(2020)는 환갑을 지난 그가 쓴 노년의 시간이다. '시간'에서 김창완은 "아침에 일어나 틀니를 들고 잠시 어떤 게 아래쪽인지 머뭇거리는 나이가 되면 그때 가서야 알게 될 거야 슬픈 일이지"라고 읊조린다. 청춘과 노년의 시간이 공생하는 김창완의 이 앨범엔 따뜻한 통기타 음악과 느린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공존한다. 김창완의 솔로 앨범 발매는 2020년 '문' 이후 3년 만이다.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한 김창완은 40여 년 동안 음악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는 "지겹도록 똑같지만 뒤집어 보면 그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일상이 내 창작의 기둥"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가 일상을 재료로 쓴 노래가 이번 앨범에 실리는 '이쁜 게 좋아요'다. 교장선생님 역으로 출연해 최근 종방한 KBS2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에 쓰려고 만든 곡을 앨범에 실었다. "드라마 속 노인학교 학생들과 다 같이 부르면 좋겠다 싶어 드라마 시작할 때 만들었어요. 엔딩 부분에서 합창으로 함께 부르고 싶어 만들었는데 사정상 드라마에선 못 불러 이 앨범에 넣었죠.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하하하." 김창완은 이날 행사에서 직접 통기타로 '이쁜 게 좋아요'를 연주하며 불렀다. "아무것도 나는 없어요. 세월이나 좀 잡아봐요"란 노랫말에 맞춰 주름진 손으로 통기타 줄을 가볍게 통통 튕기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밀레의 풍경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음악 생활을 하면서 놓치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자연스러움이다.
"음악은 부르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음악이 너무 좋아요. 주저 없이 사라져 좋고 그게 바로 명징한 아름다움이죠. 그런데 그 사라짐을 음악에 담으려면 자연스러워야 해요. 녹음할 때 여러 번 되풀이해 녹음을 하면 그 곡을 부르고 연주한 순간들이 자꾸 벽돌처럼 귀에 박혀요. 제겐 그게 귀에서 서걱거리고 그렇게 요즘엔 서걱거리는 노래가 많죠. 제게 좋은 음악은 그렇게 서걱거리지 않고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노래예요."
'나는 지구인이다'에서 김창완은 신시사이저 건반 소리에 맞춰 포근하게 노래한다. 노장은 통기타를 내려놓고 전자 음악으로 새 길을 갔다. 김창완은 "'그동안 너무 같은 음악을 반복하는 거 아닌가' 또 '내가 만든 말에 내가 갇혀 사는 건 아닌가' 이런 반성을 했다"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매일 어제의 내가 아니길 바라는 우일신의 자세로 살려고 하지만 구태를 벗어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나는 지구인이다'를 만들 때 뭘 더 내려놓아야 노래가 나올까를 고민했어요. 내 욕심과 도그마(독단)에서 벗어나는 게 간절한 바람이었어요."
변화를 꿈꾸는 김창완은 새 음반을 LP뿐만이 아니라 NFC(근거리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한 카드 앨범으로도 12월에 낸다. 다음 달 13일엔 그의 밴드와 함께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록밴드 크라잉넛과 공연한다.
"올여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면서 관객이 '물갈이'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젊은이들과 더 넓은 자리에서 더 많은 뮤지션들과 만나고 싶어요. 올해 작은 물꼬를 트면 앞으로 더 큰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젊은이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