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슬립' 김영성 "손석구·영탁, 뒤풀이까지 와서 응원... 감사해" [인터뷰]

입력
2023.11.20 22:27
'빅슬립'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수상한 김영성
"앞이 캄캄한 시간도 있었지만... 수많은 스타들 응원에 힘 얻었다"

좋은 연기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배우 김영성은 '빅슬립'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많은 무대에 섰던 그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찰나의 순간에 등장하는 역할도 그에겐 무척이나 소중했다. 하지만 들끓는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었고, 비중 있는 역할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던 중 운명처럼 '빅슬립'을 만났다.

'빅슬립'은 작은 영화가 가진 큰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태훈 감독이 연출한 '빅슬립'은 서울 외곽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30대 남자 기영(김영성)과 갈 곳 없는 10대 소년 길호(최준우)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린 영화다.

최근 본지와 만난 김영성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개봉을 기다리는 그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로 수상도 하고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개봉을 앞둔 소감이 궁금하다.

"솔직히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가라앉고 싶은데 계속 희한한 일이 생긴다. 예전 연극할 때 이후로 너무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런 게 신기하고 좋은 거다. 기분 좋은 들뜸이 있다. 어쨌든 감독님과 얘기한 것도 각자의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떠나보내자는 얘기를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수상 당시 감독과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독님이 너무 집요하게 끝까지 작품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선물을 준 거 같다. 감독님이 수상 소감으로 '여기 계신 배우들과 같이 촬영한 모든 스태프들 그의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상을 공유하고 싶다'고 한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감독님도 오래 시나리오를 쓰면서 애쓰고 힘든 시간을 아내가 지켜봤을 거다. 감독님과 레드카펫을 걸으면서도 너무 신기했다.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나고 들떴다. 내가 상을 받을 때도 감독님이 많이 우셨다. 모든 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촬영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당시가 기억나나.

"이 영화를 촬영한 건 20년도 10월부터 11월 사이다. 17~19회차 정도 찍었다. 현장에서 고민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한달 정도 연습실을 빌려서 준우랑 많이 연습했다. 감독님이 '너희 식대로 해봐라' 해서 자연스럽게 같이 만들어나갔다. 각자의 신을 잘 해결해야 한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현장에서 대기할 때는 준우와 약간의 거리감을 뒀다. 그게 연기에도 도움이 됐다."

-처음 영화에 합류하게 된 과정도 알고 싶다.

"연극할 때 필름메이커스 사이트에 자주 들어갔다. 상업영화나 드라마를 간간이 하고 오디션에 지치는 시기가 있었다. 3차까지 가면 아무래도 기대를 하는데 떨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역할이 작을 때도 있어서 '왜 난 이렇게 제자리걸음하고 있지'란 생각을 했다. 그때 독립영화는 롤이 깊게 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빅슬립' 공고가 떠있는데 세 번째 공고라고 돼있더라. 그때 지원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내가 평소 봤던 데랑 분위기가 달랐다. 8명이 앉아서 심사를 보셨는데 각자 소개도 해주시고 매너가 너무 좋았다. 되게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더라."

-그런 분위기는 감독이 의도한 것인가.

"그렇다. '빅슬립'을 쓰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 같이 따뜻하고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고 소중하게 오디션을 보자고 하셨다더라. 스케줄이 없으면 다 모여있었다고 한다. 이미지가 안 맞으면 오디션 기회를 안 주기도 하지만 왠만큼은 다 보자고 했다더라. 합류 못한 배우들도 인물 조감독에게 문자가 와서 '너무 오랜만에 즐겁게 오디션을 봤다.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더라. 그만큼 특별한 오디션 현장이었다."

-감독은 김영성 배우의 어떤 점이 좋아서 캐스팅했다고 하던가.

"가장 그 인물 같아 보였다더라. 나는 인원이 많아서 놀라서 들어간 건데, 뭔가 쭈뼛대는데 당차고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더라. 뭔가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틀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삼촌이 어릴 때 내게 했듯이 책에도 없는 대사를 했었다. 감독님이 '다음 신은 어떻게 해석을 할까 궁금했다' 하시더라. 영화에는 나오지만 오디션 대본에는 없었는데 '욕 좀 해줄 수 있냐' 물으셔서 즉흥적으로 욕을 했다. 감독님이 벌떡 일어나서 집중해 주셨다. 그때 감독님이 '(주연 캐스팅이) 끝났다' 생각하셨다더라."

-"너도 결혼 못 할 거야"라는 대사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진지함 속에 묻어나는 유머 코드가 있었다.

"사전에 연습실에서 나온 것들이다.우리는 '델리만주 신'이라고 부르는데, 먹으면서 얘기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관객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고맙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가 '괜찮을 거 같은데' 해서 두 테이크 정도 간 거 같다. 감독님이 편집을 잘해줘서 재밌는 장면으로 탄생한 거 같다."

-당시 중3이었던 준우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준우의 연기가 좋았다. 리액션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배웠다기보다 현장 경험의 세월이 많아서 그런지 물렁물렁하게 받는다. 매 테이크마다 순발력이 좋더라. 한울이나 우석이도 그렇고 생각이 되게 열려있는 거 같다. 그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돋보이는 장면도 있었던 거 같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에 몰입도가 높았는데 인생의 경험이 담겼나.

"시나리오를 보고 아버지를 많이 떠올렸다. 나를 위해 바쁘게 일하지만 내게 잘해주지는 않는 아버지, 그 인상을 떠올렸다. 아버지 인생을 떠올리면서 내 어린 시절의 화나 기쁨, 우울을 증폭시켜서 생각을 많이 했다. 외형적인 부분은 삼촌을 많이 떠올렸다. 의상팀 대신 많이 준비했다. 굉장히 건조한 느낌이 어려웠다. 잘 찾아나가려고 노력했다. 원래 책 속 캐릭터는 더 거칠고 건조하고 표현도 이상하고 그랬는데 내가 츤데레 느낌으로 틀었다고 하더라."

-촬영하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겠다. 영화는 보셨나.

"이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인데 나 또한 아버지에게 표현을 못한다. 아버지 생각이 나면 술 먹고 운다. 그 세대 아버지들은 바쁘게 일하고 돈 벌어다주고 무섭고 우리에게 왜 이렇게 관심이 없나 하고 느꼈던 부분이 많은 거 같다. 부산영화제 때 아버지가 영화를 보시고 '담배 좀 그만 피워라' 하시더라. 몸에 안 좋을 거 같다고. 하하. 아마 큰 스크린에서 아들이 나온 것만으로도 기쁘셨을거 같다."

-손석구는 '빅슬립' 시사회장에 왔고 뒤풀이도 참석했다. 직접 초대를 한 건가.

"손석구 형님과는 '범죄도시'에 함께 출연했지만 쭉 연락하고 지내진 않았다. 갑자기 이 영화 때문에 연락드리기가 죄송했다. 그런데 아내가 '너무 괜찮은 영화인데 왜 홍보를 못하냐' 하면서 내 폰을 가져가서 몰래 편지를 보냈더라. 전화를 바꿔줘서 받았는데 손석구 형이 너무 흔쾌히 '영성아 우리가 사람끼리 만난 게 아니라 일로 만난 거잖아. 서로 좋은 일 생기면 망설임 없이 알려야 한다' 하더라. 정말 감사했다."

-다른 스타들도 많이 와서 보통의 독립영화 시사회와 다른 느낌이었다.

"고은씨도 내 지인들이랑 너무 친한 사이여서 몇 번 보고 시사회도 초대 받아서 가고 그랬었는데 나는 연락처도 없었다. 초대한 감독님이 고은씨랑 연락하는 사이니까 아내가 물어봤더니 '나 갈래. 보고 싶다' 했다더라. 시사회 때 김고은이 너무 뜨겁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서울예대 동기인 이동휘도 이번 달이 제일 바쁜 때인데 그날 하루 촬영이 없어서 고맙게 와줬다. 엄태구 형도 우리 부부랑 같이 작품을 했던 적이 있고 흔쾌히 와줬다."

-배우인 아내(도윤주)가 홍보대사라 할 만큼 역할이 굉장히 컸던 거 같다. 뒤풀이에도 정말 많은 배우들이 왔더라.

"맞다. 고규필 형님이나 김준한 형, (배)유람이, (고)경표는 아내가 다 부른 거고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영탁 형도 불렀다. 뒤풀이도 끝까지 남아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내 성격상 영화 홍보를 한다기보다는 주변사람을 극장에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마치 결혼식 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하더라. 나중에 배우들의 응원 영상을 봤는데 눈물이 났다. 큰 힘을 받았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마음 한켠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거 같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유명한 작품들에도 많이 출연했는데 어떤 역할이었는지 궁금하다.

"'범죄도시2'에선 김기백 역할인데 주인공 강해상(손석구)과 대치되어서 반항하다가 갑자기 죽는 역할이다. 강해상 부하에게 목이 잘려서 죽는 역할이었다. '카지노'는 이동휘 친구 영범 역할을 했다. 최민식 선배가 내 일을 해결해주는 짧은 에피소드처럼 나오는 인물이다. '낙원의 밤'에선 수하 1이라는 역할이다. 차승원 선배 밑에 수하로 있는 역이다. 전여빈씨에게 까불다가 총을 제일 먼저 맞는 인물이다."

-전작 촬영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

"내가 전여빈씨가 쏜 총에 턱 밑을 맞는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화장실에서 엄청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빵' 하면 버튼을 특수효과팀이 누르는데 소리가 나자마자 0.5초 뒤에 반응해야 한다더라. 한번 실수하면 다시 옷을 갈아입고 피를 또 닦아야 한다. 그래서 정말 실수를 안 하려 노력했다. 총 안에 탄이 있는데 나에게 쏠 땐 탕 소리만 나고 그 다음부터 바로 실제 사격을 하는 거라서 무섭더라. '진짜 쏘시면 안돼요' 얘기했더니 (전여빈이) '선배님 절대 안 쏴요' 하더라. 하하."

-배우로서 고민의 시기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겨내왔나.

"30이라는 나이가 그랬던 거 같다. 어릴 땐 20대가 빨리 되고 싶고 민증이 생기고 싶었는데 30살은 오는 게 싫더라. 뭔가 나는 아직 스무 살 같은데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는 과정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버티는 것이 배우로서 잘하는 덕목 중에 하나이지 않나. 연극을 하다보니 형편이 안 되고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고 떳떳하고 싶은데 부모님 보기도 미안하고 하던 시기가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오디션에 자꾸 떨어지고, 그때가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스스로 '넌 잘한다. 언젠가 날 알아봐줄 거다'라는 마음이 있었다. 응원을 주변에서 많이 해주니까 그런 게 버팀목이 됐고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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