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찌르는 듯한’ 편두통 예방·억제하는 신약 ‘CGRP 억제제’ 효과가 좋지만…

입력
2023.11.20 11:07
[건강이 최고] CGRP 억제제, 일부 환자에겐 건강보험 적용 안 돼 
주사제에 이어 먹는 약까지 나와 편두통 환자 선택 폭 넓어져

‘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다’ ‘체하면 머리가 아프다’ ‘두통이 심하면 메슥거리거나 토한다’ '머리가 아프면 밝은 빛이나 소리, 냄새 등에 예민해진다'.

'두통의 왕'으로 불리는 편두통(migraine)의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편두통은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 꼴로 보고될 정도로 가장 흔한 신경과 질환의 하나다.

편두통의 국내 유병률은 6%(남성 3%, 여성 9%)인데, 여성은 40대, 남성은 2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편두통 환자의 70%는 가족력이 있는 걸로 보고된다.

편두통은 흔히 한쪽(편측) 머리가 아픈 증상만 나타난다고 여기지만, 머리 전체가 아프거나 움직임에 따라 통증 강도가 세지거나 심장이 뛰는 듯한 박동성 통증이 나타난다. 환자마다 통증 양상과 지속 시간, 동반 증상이 제각각이다.

편두통이 생기면 대부분 진통제에 의존한다. 그러나 보니 만성 편두통이나 약물과용 두통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기존에는 항우울제·항뇌전증약이나 고혈압 치료에 쓰이는 베타차단제·칼슘통로차단제 등이 편두통 예방 치료에 쓰이다 보니 체감 효과가 적었다.

그런데 편두통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에 달라붙어 두통 유발 경로를 차단하는 CGRP 수용체 길항제(CGRP 억제제)가 여럿 나와 편두통을 예방하거나 통증 횟수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CGRP 억제제로는 주사제 형태인 일라이릴리의 ‘엠겔러티(성분명 갈카네주맙)’·한독테바의 ‘아조비(성분명 프레마네주맙) 등이 있다.

그런데 지난 15일 경구용 CGRP 억제제인 한국애브비의 ‘아큅타(성분명 아토제판트)’가 편두통 예방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아큅타는 국내에서 만성·삽화성(揷畵性) 편두통 예방 치료를 위해 하루 한 번 먹으면 되기에 기존 주사제에 거부감이 있거나 1~3개월 주기의 긴 반감기(半減期)로 치료에 곤란을 겪던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경 대한두통학회 회장(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은 19일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23 추계학술대회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새로운 편두통 치료제가 많이 나와 기존 치료제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에게도 치료 가능성이 생겼다”며 “하지만 아직도 편두통에 대한 진단과 치료 중요성은 낮다”고 했다.

주 회장은 “방송이나 유튜브를 활용해 두통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CGRP 억제제 등 새로운 표적 치료제가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적극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제한적으로 승인된 CGRP 편두통 예방 치료제의 사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CGRP 억제제 ‘앰겔러티’가 간헐적 군발(群發·cluster) 두통 치료제 승인을 받았지만 저용량만 사용 가능하다.

군발 두통이란 심한 두통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두통을 말한다. 다른 두통과 달리 강도 높은 통증이 하루에 여러 차례씩 15분~3시간 정도 지속되는 게 특징이다.

주민경 회장은 “CGRP 억제제가 나왔지만 일부 환자는 비급여로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환자들의 의견과 학문적인 데이터를 취합한 것을 토대로 심평원 등 관계 기관에 급여 조건 변경의 필요성을 호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군발 두통 등 편두통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지적됐다. 문희수 대한두통학회 부회장(강북삼성병원 신경과 교수) 부회장은 “다른 병원에서 편두통 치료를 10년 간 받다가 우리 병원에서 뒤늦게 군발 두통을 진단받은 환자가 있는 데 이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 두통약은 치료에 많은 제한이 있었지만 표적 치료제가 나오면서 두통 치료 접근도 달라져 환자 맞춤형 치료제를 쓰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다.

대한두통학회는 내년 상반기에 진료 지침을 새로 내놓을 계획이다. 김병수 대한두통학회 학술이사(이대 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두통 진료 지침이 바뀌었는데 이를 참고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진료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