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야, 우리 잘해보자. 파이팅!”
세 살 믹스견 ‘버니’가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에 마련된 ‘2023 반려인능력시험’ 실기평가 출발선에 섰다. 잔뜩 긴장한 보호자 윤향은(36)씨와 달리 버니는 연신 꼬리를 흔들며 신이 났다. 시험 주제는 ‘올바르게 산책하기’. 평상시 산책 길에 마주치기 쉬운 환경을 6개 코스로 꾸며놓고 보호자와 반려견이 산책하는 모습을 반려견 전문 트레이너가 심사한다. 버니는 향은씨와 보폭을 맞추며 씩씩하게 걸었다. 도중에 자전거가 휙 지나가고 낯선 강아지들을 마주쳐도 컹컹 짖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의젓하게 파란불을 기다렸다. 60점만 받아도 ‘합격’인데 향은씨와 버니는 ‘고득점’을 기대할 만했다.
시험을 마친 향은씨는 “실기시험을 앞두고 버니와 맹연습을 했다”며 “좋은 결과를 얻은 건 간식의 힘 덕분인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향은씨는 버니를 2년 전 전북 정읍시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왔다. 안락사되기 이틀 전이었다. 심장사상충에 걸려 아팠던 버니는 향은씨를 만나 새 생명을 얻었고 반려인능력시험에도 출전하는 반려견으로 성장했다. 향은씨는 “저녁엔 고기를 듬뿍 넣은 특식을 줘야겠다”면서 버니를 꼭 껴안았다.
반려인능력시험은 서울시와 반려동물 콘텐츠기업 ‘동그람이’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로 5회째다. 강아지 부문과 고양이 부문으로 나눠 반려인이 반려동물의 행동 특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측정한다. 지난달 15일 치러진 필기시험에 이어서 이날은 강아지 부문 고득점자 80명을 대상으로 특별 실기시험이 실시됐다. 실기시험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치러졌다. 마치 ‘수능 한파’처럼 시험장에는 맹추위가 몰아쳤지만, 반려인과 반려견은 그동안 갈고닦은 호흡을 마음껏 자랑했다. 주말을 맞아 DDP에서 전시회를 보거나 주변 쇼핑몰에 들른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안전 펜스 너머에서 현장을 구경했다.
낯선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보호자 말을 듣지 않고 떼를 쓰는 강아지들도 있었다. 열 살 래브라도 ‘동화’는 시작하자마자 역주행을 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더니 급기야 펜스 너머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어머니에게 반갑게 달려가 심사위원들과 구경꾼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보호자 심화영(30)씨는 “실기시험은 살짝 망쳤지만 참가 자체로 의미가 있다. 동화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또 하나 쌓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화영씨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위탁 양육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동화를 만났다. 동화가 안내견 시험에서 떨어진 뒤 사람을 너무 잘 따르는 모습을 보고 입양을 결심했다고 한다.
반려인들에게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시험 성적에 관계없이 반려인능력시험이 반려동물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세 살 ‘킹콩이’의 반려인 유지원(32)씨는 “킹콩이를 입양하기 전 반려동물센터에서 각종 상황 대처 방법에 대해 배우며 준비했는데 교육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응시했다”며 “시험을 보면서 나도 킹콩이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기시험 평가자인 김민희 트레이너도 “참가자들이 필기시험 상위권자인 만큼 예상보다 실력이 매우 우수했다”며 “시험장이 실외이다 보니 정해진 시험 코스 외에도 비둘기, 행인, 도로 소음 등 자극 요소가 많은 편인데도 반려견이 긴장하지 않도록 반려인들이 잘 이끌어줬다”고 평했다. 또 “낯선 공간에서 반려견이 돌발행동을 하더라도 목줄을 강제로 끌어당기거나 혼내지 말고, 반려견이 보호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날 실기시험 결과는 일주일 안에 개별 통보된다. 60점을 넘긴 합격자들에게는 ‘서울펫티즌’이라는 문구가 적힌 목줄 장식품이 선물로 주어진다. 서울시와 동그람이는 “독일의 니더작센주는 반려견 면허시험에 합격해야만 반려견을 입양할 수 있는 법이 있다”며 “내년에는 더 알찬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더욱 성숙한 반려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