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이 등장한다. 지구와 우주를 위험에 빠트린다. 슈퍼 히어로들이 몸을 던져 악당의 계획을 저지하려 한다. 익숙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전개다. 하지만 자꾸 헛갈린다. 어떤 인물이 예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었는지, 또 예전에 어떤 사건으로 등장인물들이 무슨 인연을 맺었는지 자꾸 되돌려 생각하게 된다. 스크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니 이야기 맥락을 놓치기 쉽다. 단순한 내용인데 복잡하게 여겨진다. 영화 ‘더 마블스’의 모순적 특징이다.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2019)의 속편이다. 사고를 통해 빛을 통제할 수 있는 초능력을 얻게 된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즉 캡틴 마블이 여전히 스크린 중심에 선다. 댄버스의 오랜 동료이자 절친인 마리아 램보(라샤나 린치)의 딸 모니카 램보(태요나 페리스), 캡틴 마블의 열렬한 팬이자 미즈 마블로 활동 중인 소녀 카밀라 칸(이만 벨라니)이 캡틴 마블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제목이 ‘더 마블스(마블들이라는 뜻)’인 이유다. 캡틴 마블 일행이 우주 종족 크리족의 지도자 다르-벤(자웨 애슈턴)의 위험천만한 계획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105분 동안 펼쳐진다.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일단 미즈 마블은 ‘캡틴 마블’에 등장한 적이 없다. 마블 영화에 나온 적도 없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 ‘미즈 마블’(2022)을 봐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 속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에게 생긴 일을 제대로 알고 그의 심리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완다비전’(2021)을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캡틴 마블’까지 보고 가면 이해가 더 빠를 듯하다. 마블 영화와 드라마를 듬성듬성 본 이들에게는 ‘더 마블스’가 꽤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마블 팬이라면 시작부터 빠르게 몰입하며 화면 속으로 빠져들 듯하다.
볼거리가 꽤 있다. 캡틴 마블과 램보, 미즈 마블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펼치는 액션이 흥미롭다. 고양이 구스의 엉뚱한 활약상이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한국 배우 박서준이 알라드나 행성의 얀 왕자로 등장하는 대목 역시 웃음 제조를 담당한다. 알라드나 종족은 노래와 춤으로만 의사소통을 한다. 평생 뮤지컬 같은 삶을 사는 셈이다. 캡틴 마블과 얀 왕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폭소를 부를 만하다. 예전 마블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면이다. 박서준의 출연 분량은 5분가량이다. 한국 팬들로서는 실망할 수준이다.
‘두 여자’(2018)로 데뷔하고 공포 영화 ‘캔디맨’(2021)으로 눈길을 끈 니아 다코스타(34)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여성 감독으로선 최연소로 마블 영화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았다. 다코스타 감독은 마블 영화를 연출한 첫 흑인 여성 감독이기도 하다. 8일 개봉했다. 12세 이상 관람가.